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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바우 팔아 노원구 머슴이 되다
글 - 김병중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25년 01월 14일(화)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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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농암에서 농바우는 이 지역의 정신적 지주이자 역사를 증언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장롱같이 생긴 바위로 그 장롱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고, 딴은 그 바위가 고인돌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이가 있기도 하다. 개바우 꽃비리를 지나 농암 천변의 밭 가운데 자리한 바위 하나만을 고인돌이라 주장하는 데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농바우>는 견훤 전설이 내려오는 견훤 유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바위 외에 농바우 동네 들판엔 <견훤 느티나무>가 있고, 갈골쪽으로 가는 삼밭골에는 <견훤 말무덤>과 그 무덤에서 홈다리 쪽으로 넘어가는 곳엔 왕이 넘었다는 <왕재>, 그리고 농바우 건너편엔 견훤의 천마설화에 등장하는 <천마산天馬山 (쪽금산)>과 <선녀바우>가 있다.

이 바위와 지명 등 6곳은 모두 견훤 전설과 연계된 곳이다. 이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살펴보면 견훤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성장기에 말을 조련하며 견훤산성을 쌓았다. 그 뒤 나라가 향락과 부패로 인해 망국의 길로 들어서자 정의를 불태우며 고향을 떠나 무진주로 가서 후백제를 건국하는 왕이 된다. 이 중심에 있는 유적이 바로 농바우이고 서로 전설들이 앞뒤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를 무작정 고인돌로 비정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은 추론일 뿐이다.

농암면 갈동리 331-1번지에 소재한 <농바우>, 그 바위 위에 아기 견훤을 누여놓고 부모가 밭일하고 있으면 범이 산에서 내려와 젖을 먹이고 갔다는 전설 속의 장소가 이곳일 것 같기도 하다. 견훤의 <천마설화>에서 보면 <아비>의 아버지가 천마산 지경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세상을 떠났으나 <구호>가 호랑이를 대신 처치하고 그녀의 원수를 갚아준 후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견훤 탄생설화가 시작된다. 그 설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후손들이 하늘이 내린 인물인 견훤에게 젖을 먹이고 갔다는 논리를 부인하긴 어렵다. 어머니가 밭일하는 동안 그 전설의 바위 위에 견훤처럼 포대기 쌓인 채 누워 있던 아기가 있었으니 그가 견훤의 정기를 받았음직한 남장희씨다.

농바우가 자리한 땅은 논과 붙어 있는 직각삼각형의 밭으로 그 밭 중심부에 장롱같은 검고 큰 바위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 바위는 남장희씨가 강보에 쌓인 애기 때부터 요람처럼 이용하던 장소였다. 평상처럼 생긴 너럭바위 위에 그를 포대기에 싸둔 채 콩밭을 매는 어머니가 일에 열중하고 있으면 놀다가 울다가 지쳐 잠든 그에게 견훤의 혼이 내려와 그를 보듬어 주고, 그는 그 기운을 받아 청운의 꿈을 꾸지 않았을까. 너무 낭만적인 서사일지 모르지만 그의 삶을 조망해 보면 농바우는 그저 무생물의 바위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살아 숨쉬는 바위임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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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그는 갈동2리 농바우 마을에서 태어나 농바우 바위와 함께 꿈 많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바우가 있는 그 밭이 그의 집 소유였기에 누구보다 농바우라는 보물상자와 함께 성장기를 보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농암국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농바우와의 결별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는 625 전후라 하루 한끼도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던 고난의 시절에 어떻게 그가 중학교를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어머니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사내가 사람 구실하려면 까막눈은 면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의 학구열을 갖고 있었다. 고뇌 끝에 내린 결론은 전 재산에 해당하는 농바우가 있는 그 밭을 팔기로 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걸 보고 가슴이 가장 아팠던 그는 하늘이 무너져도“제가 돈을 벌어서 반드시 농바우가 있는 콩밭을 사 드리겠다”고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몇 번이고 다짐하게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차갑게 새벽 별빛이 내리는 농바우를 등 뒤에다 버려두고 고향집을 떠나 가은역까지 걸어 첫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도 눈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간다는 남대문시장, 거기서 문구점 하는 형님 밑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눈치가 빠르고 바지런한 근성을 갖고 있음에도 서울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어서 빨리 돈을 모아 농바우 콩밭을 어머니에게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으나 생각보다 서울 생활은 쉽지 않았다. 급여도 없이 입에 풀칠하고 잠자고 옷 입혀 주는 정도만 되어도 만족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때론 지치고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군 입대 영장이 날아 왔다. 나라에서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일이니 이제 콩밭은 점점 물 건너가고 죄책감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26사단에 입대하여 군 복무 중 월남전이 발발했다. 그리고 한국군도 참전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돌더니 지원자를 뽑는다고 했다. 그는 다시 농바우의 콩팥을 생각했고, 그걸 사기 위해서는 월남전 참전을 하면 충분히 해결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무도 모르게 자원을 했다. 참전을 위해서 받아야 하는 4개월간의 특수 훈련을 무사히 잘 마친 후 어머니께도 비밀로 한 채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 인천항으로 가게 되었다. 전투 중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보상금으로 반드시 콩밭을 사달라는 유언까지 써서 비밀 주머니에 넣고 비장한 각오로 장도를 나서게 된다.

하지만 농바우신이 말렸을까 아니면 천마산의 천신이 말렸을까? 멀쩡하던 그가 갑자기 몸에 이유도 모를 병이 나서 도저히 배를 탈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이르고 만다. 이런 연유로 월남전도 날아가고 콩밭도 일순에 다 날아가버렸으니 백마부대로 복귀한 뒤 허탈한 마음으로 제대를 하게 된다. 혼자 용기백배하여 자원하고 몰래 숙명적으로 포기하게 된 월남전 지원 실패로 한동안 허무감이 엄습했으나 그보다는 어머니께 콩팥을 사드리지 못한 게 더 가슴이 아팠다. 제대 후 다시 남대문의 문구점에 취직하여 새로운 맘으로 일을 재개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쁜 아가씨 손님이 손목시계를 빠뜨리고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만 해도 손목시계는 누구나 찰 수 있는 게 아니고 살기가 넉넉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결혼을 해야 예물로 받은 시계를 패용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계를 별도로 보관하면서 예의 그 아가씨가 나타나길 간절히 기다렸는데, 며칠 뒤 시계를 찾으러 아가씨가 나타나 고맙다며 사례를 하려 했다. 그때 다른 어떤 사례보다도 마음을 받는 게 좋다고 했으니 이후 이 시계가 인연이 되어 그 아가씨와 결혼하게 된다.

1971년 노원구 월계동은 달동네였고, 거기서 신혼을 시작하게 되었다. 번듯한 집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로 이웃끼리 서로 가깝게 지내는 문화가 있었다. 앞집 대문 여닫는 소리만 들어도 누가 오가는지, 뒷집 빨랫줄만 봐도 식구가 몇이라는 정도는 허물없이 알고 지내는 수준이었다. 그런 환경에다가 그는 천성적으로 워낙 부지런하여 동네 궂은 일을 도맡아 했고 경로당 노인들과 고아원 아이들을 자원하여 돌보며 이웃에 대한 봉사를 생활화했다. 그렇게 이십여 년을 살아가다보니 주민들로부터 “동네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면장을 해야 한다”는 우스겟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1995년 6월, 본의 아니게 노원구 주민들의 권유와 응원에 힘입어 <서울특별시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중졸, 소위 가방끈이 짧아 특별히 쓸 학력란이 허전하여 고민하던 차에 청암중학교 설립자이신 임건호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한학 12년으로 학교를 다닌 적도 없으나 농암면에다 중학교를 설립했다. 중요한 건 학력보다 배우고 하려는 의지이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학력란에 <독학>이라는 두 글자를 적어 넣었다. 그 당시 경쟁자인 민정당 후보는 나의 이력을 보고 이미 선거도 하기 전 당선이 확정된 듯한 분위기에서 선거운동을 여유 있게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럼에도 사나이가 한번 칼을 뽑았으니 최선을 다해 싸우자는 마음을 갖고 어디까지나 심판은 주민들이 하는 것이라는 점만 머릿속에 새기고 임했다.

그는 특별한 선거전략이 없었으나, <작지만 큰 머슴>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그저 평소에 하던 대로 동네 주민들에게 진심을 다해 봉사하며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주민들을 살뜰히 보살폈다. 그 결과 완전히 예상을 뒤엎고 현역을 물리치며 그가 당선되었는데, 그때 그의 당선 소감은 강하고 짧은 한마디였다.

“전차에 부딪친 것 같습니다. 그 차에 여러분들을 태우고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막상 당선이 되고 보니 갖고 있던 특유의 사교성과 봉사정신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근과 끈기의 농바우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로 했다. 견훤은 농암에서 자라 한 나라를 건국하는 왕이 되었는데, 나도 농암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 구 의회에서 주민들을 위해 최고로 헌신하는 일꾼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의회의 복지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좀더 체계적으로 장애인과 영세민을 위한 생활 복지에 힘을 쏟았다.

연탄배달은 물론 도배 기술을 배워 무료로 도배를 해주었고, 독거노인의 고독사 방지를 위해 매일 야쿠르트를 문 앞에 갖다 놓고 확인하는 일을 행하였다. 야쿠르트가 없으면 안심하고 그대로 있으면 문을 두드려 노인을 업고 병원으로 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평소 활달한 성격에 노래하기를 좋아해 경로당을 돌며 노래를 불러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 드렸으니 서로 피부로 닿는 밀착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임기 4년을 마치고 1998년 두번째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여유 있게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기초의원이 되어 두번이나 복지위원장을 맡았고 의장 선출까지 되었으나 동점이 나와 나이순에서 밀리게 되었다. 그렇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고 3선에 도전하려 했으나 가족의 극심한 반대로 3선을 포기하게 되었다. 작은 성공이지만 삼세판은 해야 직성이 풀릴 것같은 강한 신념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남다른 애향심으로 농암을 찾아 지역민들의 인화단결과 지역발전에 애쓰는 리더로 손꼽힌다. 그를 만나려면 고향의 행사장에 가면 만난다고 할 정도로 아무리 바빠도 고향 사랑과 그 참여는 남다르다. 농암을 갈때마다 <농바우공원>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는 <농바우>를 보면서 바위 위에서 놀던 유년과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못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그 밭을 사서 어머니께 돌려드리지 못한 죄책감은 있으나 선견지명을 가진 어머니 덕분으로 <농바우>를 팔아 노원구 의회 의원직을 산 머슴이 되었으니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 그를 보고 얼마나 자랑스럽다 하실까. 농바우가 있는 밭은 이미 공원화되어 개인 소유가 아니지만 어머니께선 가끔식 밭을 매러 농바우로 내려오지 않을까 싶어 고향을 더 자주 가게 되는 게 아닐까싶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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