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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天馬)를 타고 온 견훤의 길
글 - 김병중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23년 10월 04일(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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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천마는 여러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신비스런 용마를 말한다. 신비스런 외모와 놀라운 능력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며 주목받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신화에서 영웅 중 하나로 등장해 보통은 사람 얼굴과 용의 몸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며, 시공을 초월한 무한대의 능력을 지닌다. 이런 연유로 천마는 불사조, 장수룡과 같이 십장생 중 하나로 불린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때론 무시무시한 존재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천마는 천상계와 인간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상징하며, 중계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이 펼칠 수 있는 한계 없는 신세계의 문을 열어주므로 이 영감을 바탕으로 우리는 희망을 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경주 대릉원(大陵苑) 입구에는 천마(天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그것은 천마총 출토 ‘장니(障泥) 천마도’에 등장하는 말의 모습이다. 출토 이후, 천마(백마)의 그림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의 박혁거세 신화와 연계해 신성한 말로서 천상세계로 연결해준다고 믿고 있다. 입에서 서기를 뿜어내며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자 수직 승천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인정받은 말이다.

그렇다면 가선현(농암, 가은)에서 태어난 견훤의 탄생설화와 천마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회자하고 있는 견훤설화는 대부분 아자개 마을에 있는 금하굴의 지렁이 후손이라 쓰고 있다. 그 굴은 갈전리에 소재한 하나의 작은 바위굴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지역 사람들의 몇몇 이야기만 모아 견훤을 모신다는 숭위전까지 지은 당국의 맥락 없는 처사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 이유는 당시 갈전마을 토박이인 김두희 박사의 견해는 “폐광된 지역을 살리기 위한 터무니없이 꾸며낸 하나의 콘텐츠 개발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좀 더 견훤 유적과 지명 등을 고려해 심층적으로 접근했다면 과연 그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 생긴다. 세계 역사를 총망라하여 한 나라를 건국한 왕을 “밟으면 그저 꿈틀하는 정도의 하잘 것 없는 지렁이 존재”로 추락시킨 후 숭모하는 사례가 그 어디에 또 있다는 말인가.

견훤은 신라국 상주 가선현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정설로 통한다. 그렇다면 당시 농암과 가은 두 곳이 가선현에 속해 있었는데 과연 어디가 견훤 출생과 거주지였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일단 견훤 출생과 관련해 금하굴은 다른 지방에서 회자하는 <야래자(夜來者, 밤에 처녀를 찾아와 만나고 가는 남자) 설화>가 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유적이나 설화가 없다. 그리고 <아차마을>의 지명 유래도 견훤이 농암의 말바우(벌마)에서 아자개 마을(갈전리)로 활쏘기 대 말달리기 시합을 벌인 뒤 실수로 말의 목을 치며 “아차”라고 외쳤다하여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마을 지명이 “아자개”를 줄여서 “아자, 아차”라 했다는 설도 있고, 이곳 지형을 못오리가 호수에 내려앉는 군아투호형(群鵝投湖形)과 금비녀가 땅에 떨어진 금차낙지형(金釵落地形)이라하는데 두 지형에 등장하는 물오리(鵝)와 비녀(𨥁)를 따서 <아차(鵝釵)>라 했다고도 하며, 가은을 포함,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 함평군 대동면 덕산리,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등에도 이와 똑같은 아차설화가 여러 곳에서 전해온다. 게다가 시합의 출발지인 말바우와 과녁이 있는 아차마을 까지는 이십여 리가 넘고 둔덕산과 시바위산 등으로 막혀 있어 말을 달려 시합을 벌였다는 사실 유추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반면 견훤설화와 관련된 농암의 유적은 곳곳에 산재해 있고 인과관계도 매우 설득력이 있다. 말은 영웅들의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상으로서 견훤이 후백제 건국 영웅임을 탄탄하게 뒷받침해 준다. 말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그의 탄생설화와 관련된 <천마산>이 있고, 명마를 얻었다는 <말바우>가 있으며, 말바우가 있는 마을 지명은 <마암, 馬岩>, 말을 조련했다는 연천리의 <벌마, 벌말>, 그리고 실수로 말을 죽이고 무덤을 지었다는 농바우(갈동리) 삼밭골의 <말무덤>이 있다. 또 천마산(쪽금산)을 말로 보고 산수골을 두 개의 <말죽통>으로 본 우리나라 풍수의 대가 최창조 교수의 <죽통혈> 견해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다 벌마에서 표적으로 정했을 법한 갈동리 <느티나무(견훤느티나무)> 표적은 연천리에서 쉽게 조망이 가능하고, 실수로 죽인 말을 묻었다는 <말무덤>이 표적과 지척 간에 있으니 앞뒤가 너무 척척 맞아 떨어지지 않는가.

그리고 견훤탄생 설화에서 보면, <구호>라는 총각이 옥황상제의 딸과 몰래 사랑을 나누다 발각되어 지상에 유배 되었는데, 호환에 아버지를 잃은 <아비> 처녀를 만나 원한을 풀어주었다. 이후 둘이는 자연스레 동거를 하다 아비가 임신을 했고 구호는 유배기간이 끝나 그녀를 데리고 하늘로 올랐으나 옥황상제와 공주가 크게 노해 그들을 지상으로 내쳤다. 이후 예전에 받았던 보물 상자와 말은 각각 땅에 떨어져 두 개의 바위와 천마산이 되었고, 수백 년이 흐른 뒤 농짝같은 바위(농바우)가 갈라지면서 칼을 든 장한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견훤이라 전한다.

위 설화에서 견훤이 농짝같은 바위가 쪼개져 탄생한 반면, 동부여의 <금와왕>은 해부루가 탄 말이 큰 바위 앞에서 눈물만 흘리며 가지 않아 바위를 치웠더니 금빛이 나는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그를 금와왕이라 섬겼다. 이외에 중국의 하니족, 대만의 아메이족과 파이완족 등은 하늘에서 떨어진 큰 바위에서 왕이 출현하는 것으로 돌은 인류의 어머니인 모태를 상징하고 있다. 이런 탄생설화를 보면 견훤은 야래자 설화의 지렁이 후손이 아닌 천마설화의 신성성과 바위설화의 강인함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태어난 특별한 인물로 정의된다.

어디 이뿐인가. 견훤이 궁을 지었다는 <궁터마을>이 있고, 군사훈련을 하였다는 <북짓골>이 있는가 하면, 성재산에는 <견훤산성>이라 불리는 성이 존재하고 천마산(쪽금산)에도 <보조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다 성재산 아래엔 <견훤우물>이 있고, 낙수바우들에는 견훤이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있으며, 견훤이 말의 목을 치고 고향을 떠나 왕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던 <왕재>가 있는가 하면, 농암을 떠나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다 배가 넘나드는 곳으로 간다며 넘던 <배넘이고개>가 있다. 그 뒤 농암골에선 원추형의 돌무덤을 쌓은 후 견훤을 꼭지돌로 모신 <골맥이>가 궁기리, 농암1리, 배넘이 고개 3곳에 있고, 1955년 성재산과 개바우를 마주 보는 범바우 위쪽에는 면민 휴게소로 지은 <진향루>라는 정자가 있어 주민들이 견훤을 숭상하고 기리는 장소가 되고 있다.

한편, 견훤이 농암을 떠나 서남해로 가기 전 출정 결의를 갖는데, 그가 찾은 곳이 바로 <개(犬)바우>다. 성재산의 사자와 우복산의 범이 개바우의 개를 중간에 두고 서로 노리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설화가 있는 그곳은 죄인이 들어가도 잡지 못하는 신성불가침의 소도와 같은 곳으로 예로부터 서기를 뿜어내는 성지로 알려져 있다. 견훤은 여기서 결의 후 개바우 지명의 <개(犬)>를 따서 자신의 성으로 짓게 되는데, 그 성이 <견(甄)>씨다. 이 한자를 파자하면 “서(西)+토(土)+와(瓦)”로 “서쪽 땅으로 가서 궁전을 짓는다.”는 의미를 담고 출정해 완산주에 후백제를 건국한 왕이 된다. 항일 의병장 이강년과 의병장 신태식도 이곳에서 의병을 창의하고 밀정자를 효수하며 출정을 시작한 영험한 개바우의 개는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견훤이 건국을 함에 있어 3공신으로 꼽히는 김송, 박영규, 지훤이 있었는데, 여기서 눈여겨 볼 사람은 김송(金摠)이다. 1618년(광해군10) 이수광 순천부사가 편찬한 『승평지』에는 “김송이 상주 가은현에서 태어나 여수 등 서남해 방위의 공을 세워 비장(裨將)이 되고, 견훤을 섬겨 인가별감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둔덕산 마고할미바위가 지켜주는 도덕동천에서 태어나 조항산 기운을 받고 살면서 매일 갓바우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의상대와 원효대를 넘나들며 심신을 연마한다. 그 뒤 원종 애노의 난이 일어나 나라가 점점 어지러워지자 왜구들이 노략질을 일삼는 여수로 출정해 도적들을 평정하고 큰 공을 세운다. 돌산도와 남해도가 있는 요충지를 지키기 위해 영취산(진례산)에 진지를 틀고 지방 호족이 되는데, 몇 년 후 견훤이 군사를 이끌고 여수로 오자 이에 합세, 견훤이 왕이 되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 김송의 뿌리는 농암골 마고할미신(마고할미통시바우)의 축복과 조항산(鳥項山, 독수리 형상)의 청조(靑鳥)가 내린 신령한 기운을 받아 후일 영취산(靈鷲山, 독수리)의 성황신이 된 것은 우연히 조항산과 영취산이 같은 독수리 기운으로 일맥상통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견훤은 신비로운 천마를 타고 온 하늘이 내린 영웅이다. 그의 기운은 궁예 왕건을 능가하며 전도양양과 승승장구였고, 가는 곳마다 자기편이 되어 수많은 성을 구축하여 어딜 가도 견훤이 쌓았다는 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가 회복할 수 없는 가장 큰 실수 하나를 저지르고 만다. 924.7월 고려와 후백제가 처음으로 충돌한 조물성 전투가 끝난 뒤 견훤은 무슨 마음에서인지 왕건에게 절영도의 옥색말을 한필을 선물한다. 그것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받은 천마의 기운을 고스란히 왕건에게 물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건국은“위태로운 나라를 바로잡았다.”고 한 뒤 “활을 평양성 문루에 걸어놓고, 말에게 패강의 물을 먹이고 싶다.”며 왕건을 압박했고, 제대로 나라를 이끌고 나가려는 의지를 불태웠으나 맘대로 관철되질 않았다. 끝내 아들의 반역을 감지하고 더 이상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며 무혈의 평화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최후의 결단을 하게 되는데, 이는 곧 “스스로 나라를 건국하고 스스로 나라를 멸망시킨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한 왕”이 되어 조용히 눈을 감고 천마를 탄 채 하늘로 사라진다.

오늘도 천마산은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고 기운도 성하게 그대로이지만 사람들은 옛사람이 아니다. 송나라 풍수지리의 경전인 <옥수진경>에서도 <죽통혈>을 언급하고 있는데, “죽통 속의 수관은 모름지기 건(乾)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건이란 “하늘”이자 “왕”을 뜻하는 것이니 천마산 죽통혈 기운이 왕을 내린다는 걸 풍수에서 예견하고 있는 점에서 보면 견훤은 곧 하늘이 점지한 왕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천마의 기운을 품은 절영마를 왕건에게 양도한 탓에 이미 국운이 다했으니 어찌 하늘을 탓할 수 있겠는가. 장자라고 반드시 왕이 되어야 한다는 어리석고 부족한 자식은 과감히 내치고 스스로 세운 나라는 고려에게 양도하여 삼국 통일을 이루게 하였으니, 그를 위대한 영웅 반열에 올린다고 누가 이의를 제기하리오.

그는 떠났어도 역사와 유적은 있고, 그를 일러 농암 출생이라 쓴다고 누가 아니라고 반론을 펼 수 있겠는가. 천마와 지렁이 둘 중에 누가 더 좋으냐를 묻지 말고, 하늘이 내린 신비의 천마를 타고 온 영웅과 밤마다 몰래 담을 넘어 사랑을 나누고 동굴 속의 지렁이로 사라진 야래자 중 누가 더 존숭의 대상이 될 것인가를 물어보라. 호랑이에게서 아비를 구해낸 <구호>와 은혜에 감사하여 구호의 지어미가 된 <아비>의 실명까지 전래되는 견훤만의 고유한 천마설화를 누가 심심파적 지어낸 설화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견훤은 지금도 제 고향을 찾지 못한 채 미명의 길을 가고 있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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