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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효자 도시복이 중산(重山)에 잠든 이유
조선시대에서 숭상하던 유교의 도덕규범 가운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충과 효다.- 글 - (김병중)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24년 07월 04일(목)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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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조선시대에서 숭상하던 유교의 도덕규범 가운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충과 효다. 충은 신하가 군주에 대해서, 효는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갖게 되는 도덕적 의무를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 사상이 계승 발전되어 오면서 충신 열사와 효자가 세계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은 예의지국으로 알려져 있다. 백성들은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국난에 대처하는 것은 물론, 단일민족으로서 효행사상의 전통을 연면히 이어왔다.

나라에서는 효자 효녀로 선정되면 효자문을 세워주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복호를 내리기도 했으며, 효자는 개인이나 가문의 명예도 있지만 고을의 평판이 달라지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록으로 전하는 조선의 최고 효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명심보감 속편에 실린 효자 도시복 (都始腹, 1817~1891)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호랑이 등을 타고 여름에 홍시를 얻어온 일, 엄동설한에 잉어를 잡아온 일, 한겨울에 수박을 구해드린 이야기 등은 전설의 고향이나 전래동화에나 나올 법하지만 왕이 효행을 인정하고 그것이 기록으로 전해오는 만큼 이를 부정하기도 어렵다.

그는 예천군 상리면 야항리에서 도상진(都尙震)과 강릉유씨(江陵劉氏)의 다섯 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나 호구지책으로 숯을 구워서 내다 팔아 집안을 돌보며 지극한 효행을 남겨 나라의 귀감이 되었으므로 지자체에서는 많은 예산을 들여 생가를 복원하고, 2016.2.1. 상리면을 효자면으로, 지방도 927호 일부를 <도효자로>로 지정하며, 예천을 충효의 고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작업을 지속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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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그런데 효자 도시복의 묘소가 농암면 내서리 다락골 계곡 중산에 있는 것이 연전에 확인되자 문경시와 예천군 관계자들은 많은 의문을 갖고 그 진의를 밝히고자 했고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현장 취재까지 벌인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예천에 살던 都효자의 묘가 왜 멀리 떨어진 농암면 내서리에 자리하고 있는지? 내서리 주변과 도씨 주변 혈족들을 찾아보았지만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가까스로 그의 고손자로 밝혀진 도우섭(농암면 지동리)씨에게도 이를 확인했으나 이유에 대해 아는 바 없다 하므로 이대로 궁금증만 남긴 채 서서히 묻혀버리는듯 했다.

이런 와중에 농암국교 10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산소가 있는 곳에서 가까운 마을에 都씨가 살았음을 밝혀내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나갔다. 내서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율수리 마을에 50여 년 전쯤 都씨 2가구가 살았는데, 그들이 지금은 고향을 떠났지만 도착환(1952년생), 도환(1957년생)씨 형제, 그리고 도능환(1956년생)씨로 그들의 연락처를 찾으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주 도씨 진사공 천계파(進士公天啓波, 대동보 권5, 867페이지) 족보에 도시복의 아들인 도진화의 기록에서 그동안 품었던 의문점을 밝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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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도효자의 외아들인 도진화(都鎭華, 1854.10.2.~1915.10.27)의 족보기록에 “천성이 온후하고 종족과 돈목하였다. 갑오년 동학란에 예천 상리 야항(也項)으로부터 농암면 중산리에 이거하였다. 1915.10.27. 卒, 묘는 선고 兆下”였다. 이는 도효자가 세상을 뜬 해가 1891년이고, 동학란이 일어난 게 1894년이니 진화는 도효자가 타계하자 예천에 묘를 지었다가, 동학란으로 인해 다락골 중산까지 피신·이주한 이후 이장을 한 것으로 비정된다.

이런 정황들을 살펴보노라면 그의 아들 진화가 왜 하필 농암하고도 심산유곡인 다락골 중산 골짜기로 들어왔는지 이유가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다락골 지형이 아가리 없는 홈골이자 높은 다락과 같이 생긴 요새로 병화가 없는 우복동 길지라는 점이 작용했을 법하다. 하지만 당시 예천은 동학혁명의 열기가 여타지역보다 뜨거웠고 1894.9.27. 예천 <서정자들>에서는 동학농민군과 그 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한 민보군 사이에 대규모 전투(2023.10.12. 예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기념비 건립)가 벌어졌던 사실을 추론하면, 진화가 진성 동학교도로 혁명의 선봉에 섰다가 전투가 끝나면서 아들 찬호(鑽浩, 1873.10.23.~1950.8.6.)가 통정대부라는 고관 벼슬을 하고 있는 점 등 혹시나 모를 후를 염려하여 이곳으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동학혁명에 대한 처벌만을 두려워했다면 차라리 우복동이라 널리 알려진 내서리 광정마을 부근으로 이주했을 터이다. 그러나 효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충신은 나라에 충성한다는 말을 간과할 수 없다. 효자나 충신은 올곧은 일념으로 최선을 다해 헌신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도효자의 아들인 도진화도 아버지로부터 효를 대물림받은 데다가 당시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고는 지극한 효성 대신 나라를 위한 구국일념으로 동학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학이 봉건사회를 부정하고 부패척결 및 반외세의 기치를 내세운 농민혁명으로 항일전쟁과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면, 의병은 민병 조직으로 임진왜란 발발시 부터 국권 회복을 위한 대규모 구국 투쟁이었으니 양자가 항일이라는 공동목표 구현을 위한 동일한 행위인 것이다. 여기서 도진화는 동학의 선봉장으로 활동하면서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맹활약하다 순국한 의병들의 창의 방법이나 전략 등을 참고하면서 자연히 중봉 조헌을 흠모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그가 농암으로 들어오면서 중봉 조헌이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의진을 치고 머물던 중산 마을은 그에게 있어 단순한 하나의 깊은 골짝이 아니라 생기충천하는 충효의 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애국의 성지라 생각하며 살았으리라. 그래서 하늘도 그들 부자의 갸륵한 정신을 살펴 종국에는 도효자와 도진화의 묘를 중산의 산록에 안장하도록 허락한 것이 아니겠는가.

중봉이 보은에서 농암으로 들어와 그가 이끄는 기세 등등한 의병들의 의진과 그의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와 결의에 감복한 고을 사람들이 앞산의 이름을 중산(重山)이라 지었듯, 도효자와 그의 아들도 충효와 중봉의 정신을 기리며 살다가 죽어서는 의병 기운이 살아 숨쉬는 중산에 의롭게 누워있으니 이 또한 교훈적이라 할 수 있겠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것을 도시복과 그의 아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서울 종로의 효자로와 효자동,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강원 춘천시 효자동이 있다면 예천에는 효자면이 있다. 그렇다면 농암에는 효자인 도시복과 동학혁명 선봉인 도진화의 묘가 중산에 있는 데 이를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문화재의 범주로 보면 새로 짓거나 복원한 생가보다는 천연 유택이 상당수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고, 효의 본산인 퇴계의 도산서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만큼 지자체에서는 도시복의 묘소를 충효사상을 기리는 시대에 걸맞는 콘텐츠로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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