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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무제(無題)
시인․수필가 - 김병연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26년 09월 02일(수)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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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숲속의 갈대와 고무나무가 서로 자기가 더 강하다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고 있었다. 고무나무는 갈대를 보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는 네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하며 비난했다. 때마침 갈대가 반박하려 할 때 갑자기 강풍이 불어왔다. 갈대는 허리를 굽히고 바람에 몸을 맡겨 뿌리가 뽑히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람에 꼿꼿이 맞선 고무나무는 뿌리째 뽑혀버렸다. 고무나무는 왜 쓰러진 것일까. 강풍에 맞설 용기는 있었지만 유연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대는 유연함이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사람의 인성을 흑백 논리로 말하면 강함과 유연함, 이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따라서 강함을 추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유연함을 지녀야 하는가는 모든 사람에게 던져진 화두이기도 하고 성공 처세술의 미션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연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것이고, 그것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후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이 두 속담은 요즘의 가치관(價値觀)과 맞아떨어진다. 보기에 좋아 떡을 집었는데 맛까지 좋으니 행운이고 칙칙한 옷 사이에서 때깔 좋은 옷을 골랐는데 같은 값이라니 이 또한 행운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드물게 일어나는 요행(僥倖)이다. 겉을 치장하느라 안을 소홀히 해 품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확률이 높고 안이 갖고 있는 약점(弱點)을 숨기려고 밖을 요란하게 했을 가능성(可能性)도 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 사회의 가치척도(價値尺度)는 인격이 사라지고 밖으로 드러난 자동차와 집과 옷과 미모 그리고 사회․경제적 위상으로 인격과 능력을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기에 좋으면 모든 게 좋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과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차지하려는 섣부른 경쟁 심리를 부추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기 좋은 것에 기대어 내용을 소홀히 하거나 내용의 부실을 보기 좋은 것으로 은폐하기도 한다. 옛날 어른들은 이런 뜻으로 앞의 속담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두 속담의 진의는 아마도 매사에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잘하라는 충고로, 좀 더 효용가치가 큰 것을 선택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요즘의 외형중심주의는 간판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그만하면 간판이 됐다고 할 때의 간판은 학벌과 외모와 배경 등 외적 조건을 두루 망라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간판을 바꾸어 단 경우도 있겠지만 이미 확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모가 그렇고 학벌이나 배경도 경제적 여건이나 선천적 요인 그리고 인맥 등에 의해 유지되고 개선된다. 또 그 각각의 조건들은 독립적으로 형성되지 않고 상호 얽혀있어서 전체를 확보하거나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는 상반된 처지를 만든다. 이대로 간다면 자수성가나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머지않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외형중심주의를 만드는 가장 상위의 조건이 경제력(經濟力)이다. 학벌과 외모와 배경 같은 간판을 만드는 것이 돈이며 필요할 경우 돈으로 그것을 살 수도 있다. 세간에는 자녀의 성적은 부모의 재력 순이라는 말도 있다. 사랑이나 행복과 같은 내면적인 것을 제외하고 돈으로 얻을 수 없는 외적 조건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건강과 생명연장도 경제력에 따라 좌우되는 세상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추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있고 외적 조건이 내면을 압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생명을 건 성형수술(成形手術) 열풍도 간판을 바꾸기 위한 몸부림이다.

간판의 위력이 강화된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간판의 본래 기능은 안의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요즘은 간판시대(看板時代)이지만,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외형보다 내면이고 겉을 보고 안까지 판단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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