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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를 통해 견훤 탄생지를 밝혀내다
글 - 김병중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 입력 : 2025년 07월 10일(목)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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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문경시민신문 | | 1745년 제작된 <영남지도>와 18세기 중엽 <광여도>, 1750년대 <해동지도>와 <1786년 문경지도>, <1872년 군현지도>에서 견훤이 어디 살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5건의 자료를 찾아냈다. 영남지도와 광여도 2곳에는 <甄萱宮基(견훤궁기)>, 해동지도 등 3곳에는 <宮基(궁기)>라는 지명이 한자로 기재되어 있다. 이 기록은 단순히 궁이 있던 터라는 <궁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정확히 <견훤>이 부가 명명되어 있어 그동안 지명유래 정도로 생각해 왔던 입장에서 이제는 견훤이 이곳에 궁을 지었다는 기록으로 확인되어 농암이 견훤의 탄생과 성장기의 터전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1767년 <조선지도>와 <1786년 문경지도>, <1872년 군현지도>에는 <甄萱山城(견훤산성)>과 <甄萱城(견훤성)>을 3곳에 각각 표기하고 있다. 이 기록으로 농암에 위치한 견훤산성은 직접 견훤과 관계가 있고 또한 견훤이 쌓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공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다. 전부터 견훤이 쌓았다는 성은 여러 곳이 있었으나 이처럼 고지도에서 적확하게 견훤산성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그간의 논란거리가 해소된 것이다.
|  | | ⓒ 문경시민신문 | | 오래된 역사를 고증 복원할 때는 해당 전문가와 행정기관의 견해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입증이 될만한 공적인 사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견훤이 세운 후백제는 실패한 왕조로 취급되어 고려가 기술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의해 상당 부분 평가절하 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10개 정도의 탄생설화가 있으나 가장 하잘 것 없는 지렁이 설화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다. 지렁이가 견훤 아버지로 등장하여 그를 사생아 취급하면서도 당시 사벌주 장수였던 아자개가 또다른 그의 아버지로 등장하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견훤 탄생지는 가은 갈전리이고, 견훤이 쌓은 성은 상주 화북의 산성으로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견훤 탄생지와 견훤산성은 입증할만한 공적 사료가 없는 것이 큰 문제였다. 구전에 의해 전한다는 식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여 굴을 파고 누각을 짓으며 성을 보수하여 기념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견훤 역사를 왜곡하는 실책을 범하고 만 것이다. 탄생지는 갈전리 마을에서 금하굴을 파서 설화와 연계시켜 견훤이 태어난 곳이라 명명했고, 산성은 기록이 있는 농암의 견훤산성은 아예 무시하고 기록이 없는 화북의 산성을 신속하게 정비하여 기념물로 지정했던 것이다. 정확하고 철저한 조사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먼저 견훤 유적을 만들기 전에 자기들의 유적으로 만들고자 서두른 것이 큰 문제를 초래한 셈이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대왕은 우리나라 왕 중에 설화가 가장 많고 성을 많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연유로 지자체마다 탄생지와 산성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공적인 입증 사료는 거의 없다. 특히 금하굴은 근거 있는 사료에 의한 유적지로 된 것이 아니라 1946년 갈전리 사람들이 마을 금하정 옆에 있는 굴을 판 다음, 그곳을 견훤설화에 등장하는 지렁이 굴로 비정하고 그 옆에 견훤을 모시는 <숭위전>을 지은 것이다. 이는 마을 사람들과 행정 당국자들의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진 종이 호랑이같은 유적지일 뿐이다.
금하굴 옆에 있는 <금하정>은 1929년 김태영이 자신의 부친인 김상보를 기려 지은 효행 정자다. 정자 옆에는 굴이 하나 있는데 그 굴을 1946년 마을 사람들이 파서 그곳을 견훤이 태어난 지렁이 굴로 만들었다. 다만 아자개와 견훤이 가선현(가은현) 사람이라는 기록이 삼국유사 등에서 전할 뿐이다. 김태영의 손자인 김두희 박사는 1997년 문경시장에게 보낸 <견훤유적지 조성사업에 대한 이견>이라는 서한에서 “금하굴은 견훤유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금하굴은 1946년 동민들이 소득을 올려보겠다고 마을에서 파다가 실패한 흔적”이라고 했다.
금하정 건립시 쓴 <금하정기>에 의하면 김태영이 정자를 이곳에 짓고 이름을 금하(金霞)라 하였으며, 이는 오래된 굴의 이름을 따 온 것으로, 땅속의 끝이 형(衡)자에 가까웠다고 적고 있다. 금하굴 입구는 확 트여있는데 옛 노인들이 전하기를 돌문이 500년 동안 스스로 열리고 닫히면서 흥망이 바뀌므로 마을 사람들이 굴문을 파내어 통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금하굴은 명당의 전설로 전해지고는 있으나 견훤과 지렁이 설화와는 무관하다. 결론적으로 금하정이 1929년 지어졌고, 금하굴은 1946년 지역 발전을 위해 동민들이 굴을 더 파내어 야래자 설화를 끌어다 지렁이가 살던 설화 속의 동굴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견훤산성에 대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이트에서 그것을 검색해 보면 불확실했던 여러 가지 시비를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에 있는 석축 산성이며, 이 성이 언제부터 견훤산성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시대의 각종 읍지류나 고지도에는 성곽의 존재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견훤이 이곳에 웅거하며 북쪽 지방에서 경주로 향하는 공납물을 거두어들였다고 하는 구전이 있을 뿐이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문경 가은 출신이므로 사람들이 인근 지역의 성곽을 견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문경(농암)에도 견훤산성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 산성이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성을 쌓은 방식과 형태로 볼 때 초기 신라 산성 특징을 띠고 있어 통일 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정 이전까지 고고학적인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표 조사는 1997년에 실시되어 산성의 규모와 구조 등을 확인하였으며 조사단은 출토 유물을 근거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축성된 신라성으로 추정하였다. 2010년에 견훤산성에 대한 발굴 조사가 추정 동문지 구간에 대하여 실시되었지만, 그 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성 내외 벽과 보축 성벽만 확인되었다.(한국학중앙연구원)”는 기록이다.
반면, <문경현지(聞慶縣誌)(영조본)> 고적조(古蹟條)에는 “견훤산성은 가은현 서남 5리에 있다. 산 위에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565척이다.”라 했고, <환여승람(還輿勝覽)>에는 “백제성, 일명 견훤산성이라 한다. 청화산 동쪽 10리에 있다. 견훤이 그 가운데 웅거했었다고 한다. 석천(石泉)이 하나 있다.”고 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가은 고현성, 고현 서남쪽으로 5리, 둘레는 5백 65척이며, 우물이 10개이다. 일명 견훤성이라 한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 위치는 농암의 견훤산성이 있는 현재 성재산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료를 종합 정리해 보면 이번 새롭게 확인된 고지도에 의해 견훤의 탄생지는 농암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고지도 6곳에서 견훤궁기와 견훤궁, 견훤산성과 견훤성, 그리고 천마설화와 연계되는 농암(농바우: 갈동)이라는 지명(1872년 군현지도)까지 인과성을 확보하며 정확히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견훤이 태어났을 당시 농암이 가선현(가은현)에 속해 있었고, 설화에 등장하는 천마산과 하늘에서 떨어진 농바위, 명마를 얻은 말바우와 말을 묻은 말무덤 등이 실제로 이 지역에 존재하고 있어서이다. 농암의 견훤산성은 안내판 하나 없이 잠들어 있지만 고지도 3곳과 다른 사료에서도 충분히 확인되었으므로 이제 농암의 산성은 견훤이라는 이름을 하루빨리 되찾아야 할 것이다.
소중한 고지도 등의 새롭게 발굴 입증된 자료에 따라 경북도와 상주시와 문경시 등에서는 보다 정확한 견훤역사의 조사 및 정리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후백제 역사 복원을 위한 견훤 역사 프로젝트를 이미 상당부분 수행하고 있는데, 그것에 상당한 오류가 있다면 후일 씻을 수 없는 오명과 예산 낭비 등이 문제로 남을 것이다. 역사란 어느 지역에서 누가 선제적으로 빨리 기념물로 지정하거나 힘에 의한 견강부회로 유적을 만들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가치있는 견훤 역사라고 서둘러 홍보하고 소유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료에 의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설득력 있는 결과물이 나와야만 영세토록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 유산이 되기 때문이다.
|  | | ↑↑ 광여도 문경현지도 | ⓒ 문경시민신문 | |
|  | | ↑↑ 지방지도(1872)확대본 | ⓒ 문경시민신문 | |
|  | | ↑↑ 1786년 문경현지도(확대본) | ⓒ 문경시민신문 | |
|  | | ↑↑ 해동지도 문경현 | ⓒ 문경시민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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