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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의사의 아나키즘(아나키스트)은 무엇인가?
New문경연구소장
오석 김문한
문경포럼 회원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 입력 : 2025년 05월 31일(토)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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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문경시민신문 | | 아나키즘을 주창한 프랑스의 조셉 푸르동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상가들은 아나키스트의 뜻을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들. 국가나 정부의 모든 억압과 지배를 반대하고 사회 혁명을 통해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사상을 말하며 흔히 무정부주의자라 하지만, 아나키즘은 그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을 가진다. 조선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민족 해방 운동이다”라고 한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조선의 대표적 아나키스트로는 이회영, 신채호, 김원봉, 백정기, 박열 등이고 그들은 다양한 단체들을 만들고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 사상적, 무력적인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하고 존재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박열(朴烈) 의사(義士)는 독립운동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선의 마지막 아나키스트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닌다. 필자는 당시 아나키즘 사상은 이 땅의 모든 독립운동가의 사상적 기본이라 생각한다.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꼬 후미코는 일본 제국주의 천황제를 부정하고 조선의 민족해방 운동을 위해 같이 투쟁하는 아나키스트임을 구속된 후 법정에서 스스로 밝힌다. 그리고 박열은 22년 2개월이라는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추어 전대미문의 상상도 할 수 없는 독립운동사에 최장기 수감생활을 한 사실도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열 의사는 청소년기 나라 없는 설움의 조국에서 조선 독립을 외치다가 청년기 약관의 나이 때 제국주의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제를 부정하며 투쟁하고 투옥되기까지 제국주의 심장에서 재일본 조선인들에게는 힘든 하루하루가 박열 의사가 옥중 투쟁하는 상황이 독립운동가 중 유일하게 하나 더 붙은 계급장 같은 이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주장해 본다.
일본인 같지 않은 가네꼬 후미코 여사와 당당하게 함께 감당해 내신 옥사 내에서의 투쟁 상황은 위태롭고 놀라움에 탄성이 나온다. 가네꼬 후미코! 그는 어린 시절 망국의 조선 땅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7년여를 살면서 조선 민족의 핍박을 보고 목숨을 건 천황 폐지 주장의 아나키스트인가 아니면 열렬히 사랑한 조선인 청년 박열에 대한 사상적 동지인가, 지고지순한 사랑의 정표로 목숨을 건 것일까?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 합병으로 대부분 만주나 소련의 극동지방을 터 잡아 다양하게 무장투쟁 위주의 독립운동이 중심일 때 조선의 한 젊은 청년은 제국주의의 심장 도쿄 중심가에서 조선 독립의 사상적 주장과 재일본 교포들을 위한 투쟁을 한 약관 20세의 조선 청년과 일본인 아내 가내꼬 후미코의 등장은 실로 서슬 퍼런 당시에 본토 일본인들은 충격이었고 조선인들에게는 그는 희망이고 삶과 나라를 되찾는 조국 사랑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박열은 일제 치하에서 제국주의를 부정하며 최장기 감옥 생활 후 석방된다. 광복 이후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이후 조총련과 민단으로 분리됨) 단장으로의 활동, 이승만 초대 정부에 기여, 신탁통치 반대 등 많은 일을 하였다. 고국으로 영구 귀국하자마자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혼란한 서울에서 북한으로 납북 되었다.
널리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사실의 내용을 보면 의사께서는 뼛속까지 애국 반공주의자를 증명하지 않을까? 한다. 천황의 폭살을 계획하고 실행 단계에서 동반 투옥 후 가네꼬 후미코 여사를 옥중에서 3년 만에 여의고 기나긴 투옥의 시간을 보낸 뒤 조국의 해방으로 출소 후 재일교포 출신 여성과 두 번째 결혼으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얻었다.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장의숙 여사는 1968년 북한에 있던 박열 의사로부터 “자녀들을 조국으로 데려가서 교육해라.” “조국을 위해 바쳐라”라는 뜻과 함께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을 동봉한 편지를 받는다. 그녀는 의사의 유지를 받들어 일본에서 나고 자란 우리말을 전혀 못 하는 그의 아들 박영일을 조국으로 데려와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시킨다. 그가 재일교포 최초의 사관생도이자 장군 출신이다.
아들 박영일이 육사를 졸업하고 그 이듬해에 박열 의사는 북한에서 서거한다. 파란만장한 박열 의사의 일생 전체는 대를 이어 오직 조국의 독립과 투철한 애국 국가관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모두 본받아야 할 것이며, 이제는 북녘땅에 있는 그의 유해를 모셔 와 사상적 동반자 가네꼬 후미코 여사 옆에 안장되는 그것으로 그의 기나긴 처절했던 나라 사랑은 사상적으로 완성되지 않을까? 그리고 영면하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그의 일생 행장(行狀)을 보면 참으로 숙연해진다. 필자는 아나키스트란 단어에 꽂혀 세 번이나 박열 의사 기념관을 방문했다. 그 이유는 늘 편하게 다가오지 않고 광대한 아나키즘 사상의 복잡하고 난해한 이해가 늘 부족하고 불편하여 나름 뭔가 한쪽으로 치우쳐진 사상가 아닌가?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마지막 방문 때 확신을 가지고 이제는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지난한 삶을 살다간 분으로 확신이 선다.
|  | | ↑↑ NULL | ⓒ 문경시민신문 | | 박열의사기념관(경상북도 기념물 제148호) 앞에 서면 의사의 복원된 생가 뒤뜰에 아주 낮지만, 박열 의사의 파란만장하고 험난한 일생을 미리부터 예고라도 한 듯한 범상치 않은 봉우리가 있다. 낮지만 험난한 오름 정상에 *열의정(㤠義亭)이 있다. 독립군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중국 연변 용정의 일송정(一松亭)이 늘 Overlap 되는 결코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숭고하기까지 하다. 갈 적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오르곤 한 마음속의 큰 산? 이었다. 청년 박열이 일본으로 떠나가기 전 여기에 올라 망국의 조국 산하를 보시고 큰 뜻을 품고 떠나지 않았을까? 박열의사기념관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꼭 한번 올라 보시길 추천해 본다.
박열!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분연히 맞서 싸운 위대한 사상가요, 독립 투사였으며 대를 이어 뼛속까지 자유 대한민국을 사랑한 위대한 구국의 인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는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을 위하여 독립운동가 중 최장기 투옥 투쟁과 조국을 위해 일생 전부를, 대를 이어 바치신 분이라고 정의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박열의사기념관’이 호국의 성지로 영원하길 기원한다.
가네꼬 후미코 여사, 장의숙 여사, 아들 박영일 장군, 딸 박경희 님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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