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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견훤의 탄생설화
김병중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23년 05월 09일(화)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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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견훤은 후삼국시대를 연 인물 중 가장 두각을 드러낸 영웅이었다. 견훤, 왕건, 궁예, 양길 중 가장 강성한 세력을 떨쳤다. 하지만 장수로서의 기질은 단연 으뜸이었으나 후계자 선정을 위한 아들과의 불화로 비운의 생애로 마감하며 후백제도 쓸쓸한 종말을 맞게 된다. 한 나라를 건국한 국조대왕으로서 그의 위상은 간단치 않다. 상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향을 떠나 멀리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거기서 후백제 왕이 된다는 것은 하늘이 돕거나 아니면 출중한 능력을 갖지 못하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후백제 영웅을 복원하는 역사가 시작되자 해당 자치단체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을 펼치며 사라져가는 역사 속의 실존 인물 되살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연초부터 견훤의 초상을 그리는 데 1억 5천만원을 투입하는가 하면, 문경시에서는 2년 전부터 견훤 역사 유적지 정비계획을 대대적으로 수립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지나간 역사라고 하여 적당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견강부회식의 스토리텔링을 해서는 안 되며, 누가 보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역사로의 재조명이 필요하다.

ⓒ 문경시민신문
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견훤의 출생지는 상주 가은현, 광주 북촌, 청도 지룡산 등으로 서로 그곳에서 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계의 주된 견해는 상주 가은현 으로 비정하고 그가 아자개의 아들이자 금하굴 지렁이 설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심지어 견훤 생가터가 아차마을에서 발견되었다고 홍보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은 고려시대에 쓰인 승자의 기록이므로 신라는 견훤과 적대적 감정이 있고 또 실패한 영웅에 대해 얼마나 공정하게 기록하겠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이런 기록의 신빙성 여부를 무시한다 해도 보다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바로 견훤 관련 유적이 어디에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의 검토가 매우 중요해진다.

가은에는 견훤관련 유적이 금하굴과 아차마을 정도라면 농암 곳곳에는 서로 연결고리가 된 유적과 전설들이 몇 배 더 많다. 명마를 얻었다는 말바우와 궁을 짓고 살았다는 궁터마을, 견훤이 쌓았다는 견훤산성(천마산성)과 보조성인 쪽금산성, 군사들이 훈련을 했다는 북짓골과 벌말, 하늘에서 말 한필과 보물상자 두 개를 내려 말은 천마산이 되고 보물상자는 농바우와 선녀바우가 되었다는 곳이 실존하고 이곳 지명도 농암으로 불린다.

견훤이 말과 화살 중 누가 빠른지 시합에서 말이 억울하게 죽임당해 묻힌 말무덤이 있고, 견훤이 심었다는 느티나무와 견훤 우물터인 약천, 그리고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서 노국공주에게 말타기를 배우고 넘었다는 왕재, 견훤왕을 숭상하는 3개의 골맥이 등의 유적과 설화들이 있기에 이를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첫째, 견훤은 지렁이의 후손이 아니라 하늘(옥황상제)이 내린 천마 한필과 두 개의 보물상자가 바위가 되어 그 속에서 장한이 탄생했다는 바위설화가 더 설득력이 있다. 이 설화에서 총각 구호와 처녀 아비의 실명이 나오고, 지명 또한 천마산과 농바위와 선녀바위로 상관관계가 성립 된다. “구호”는 아버지가 호환을 당해 울고 있는 아비를 보고 그 호랑이에게서 구한다(求虎)는 뜻을 내포하고, “아비”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호랑이로 인해 구호라는 총각과 지아비(아비)의 인연을 맺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김부식이 저주하여 지렁이 후손이라고 폄하한 것을 그대로 받아 금하굴 옆에 숭위전을 짓고 초라한 지렁이 신에게 제사까지 올린다는 건 왠지 어색해 보인다. 한 나라를 건국한 왕을 영웅시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상례인데 견훤을 금하굴의 지렁이 후손으로 단정하고 심지어 소금을 뿌리면 힘을 잃는다고 평가 절하하는 건 대왕에 대한 예가 아닌 것이다.

둘째, 신라 신문왕 7년에 전국을 9주5소경으로 정비, 농암면은 경덕왕 16년(757년) 상주 고령군 가선현(가은현)으로, 고려 초에는 상주 고령군 가은현에 속했다. 따라서 삼국사기 등에서 견훤이 가은현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농암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동시에 성립되므로 탄생지에 대해 현재의 가은으로만 국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건국설화와 영웅설화는 말과 말무덤 설화로 전해진다. 부여 금와왕과 신라 박혁거세, 고구려의 주몽은 말이 등장하여 상서로운 기운으로 탄생하고, 흑치상지, 최영, 곽재우, 김덕령, 정여립, 이괄 등은 말무덤 설화와 관련을 지어 영웅화하고 있다. 하지만 견훤은 하늘에서 천마가 내려와 생긴 천마산의 바위 속에서 탄생하고, 말바우에서 명마를 얻어 치마의 과정을 거쳐 갈동의 말무덤에서 말을 묻는 견훤 영웅설화가 있음에도 왜 힘없는 지렁이로 땅속에 묻어두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넷째, 견훤이 말바우에서 과녁을 가은의 아차마을로 향하고 말과 화살의 경주를 했다 하지만 말바우에서 아차산까지는 일직선으로 보기 어렵고, 여러 개의 산으로 막혀 있으며, 거리도 이십여 리가 넘어 수긍이 쉽지 않다. 하지만 농암의 말바우에서 농바우 방향은 앞이 터진 벌판인데다 농바우 인근에 말무덤이 있는 것을 보면 견훤의 치마대 전설은 농암이 더 가깝다. 만일 견훤이 아차마을에서 말을 죽였다면 왜 죽은 말을 싣고 농암까지 먼 길을 와서 무덤을 짓겠는가.

다섯째, 견훤산성은 다수 분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농암의 산성은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상이 소쿠리형으로 진지를 구축하기 용이하고, 좌우 사면의 경사도가 급해 적의 접근이 어려우며, 농암천이 해자(垓字) 역할을 해주어 수비에도 아주 적합하다. 본성 외에 쪽금산 보조성이 따로 연하여 견훤이 세력을 키움에 있어 군병 훈련과 주둔, 그리고 견훤우물(약천)까지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유년시절부터 견훤이 장수가 되기까지 문무와 호연지기를 키운 곳으로 별 무리가 없다.

필자는 금번 농암초등학교 백주년 기념사업으로 견훤의 설화관련 자료수집과 현지답사, 생존자의 구술 등을 들으며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찾아냈다. 향후 이를 스토리텔링 하여 그동안 견훤의 왜곡된 탄생설화를 바로 잡아 나갈 것이다. 위의 내용을 감안한다면 문경시의 복원계획 중 아차마을, 아자개 중심과 왕건과 견훤의 격전지로 알려진 근품산성의 부각은 한번쯤 재고해야할 사안으로 생각한다. 장수는 피흘리며 목숨을 걸고 싸우고 영웅은 후세들이 더 멋지게 만드는 법이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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