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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경서(聞喜慶瑞)의 고장 문경(聞慶), 지명 이야기
향토사 연구원 이만유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22년 07월 04일(월)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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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문경의 지명은 신라시대에는 고사갈이성, 관현(冠縣), 관문현(冠文縣)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관산현, 고려시대 때는 문희(聞喜)였다가 문경(聞慶)으로 바뀌어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문경(聞慶)으로 불리어왔다. 문희, 문경은 들을 문(聞), 기쁠 희(喜), 경사 경(慶) 자로 기쁘고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기분 좋은 지명이다.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바라며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나 전국의 보부상들이 대박을 꿈꾸며 팔도를 다닐 때 주로 이용했던 고갯길이 문경새재다. 한양으로 가는 대표적인 큰길로 추풍령, 문경새재(조령), 죽령이 있었지만, 속설에 의하면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으로 가면 죽 쓴다거나 죽 미끄러진다고 하여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으로 가는 길을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인지 예로부터 문경은 기쁜 소식을 듣고 경사스러운 일의 조짐이 있다는 뜻으로 “문희경서(聞喜慶瑞)의 고장”이라 하였다.

그리고 또 문경에는 “문경삼관(聞慶三關) 대한삼경(大韓三慶)”이란 말이 있다. 선견지명이 있는 옛사람들이 그 지방의 역사와 문화, 풍토와 지형, 천문지리를 관찰하여 미래를 미리 짐작하여 숨은 뜻을 지명(地名)을 통하여 전한다는데 그래서일까?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관문 3개 있고, 그 문경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적인 큰 경사 소식을 3번 듣는다는 예언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첫 번째가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경상도 안동으로 몽진하여 인근을 순행 중 문경 주흘산 어류동(御留洞)에 머물 때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 제1경이며, 두 번째는 주역학의 종장(宗長) 야산(也山) 이달 선생이 지리산에 계실 때 멀리 문경 쪽에서 서기가 비치므로 천기를 받아 나라에 경사가 있을 징조임을 알고 1945년 8월 14일 전국의 제자들을 문경으로 모이게 해서 꼬끼오! 꼬끼오! 하며 닭춤을 추었는데 이를 보고 제자들이 영문을 몰라 했으나 그다음 날 광복의 기쁜 소식을 들은 것, 다시 말해 꼬끼오! 닭이 울어 새날이 밝았다는 신호를 보낸 조국광복의 제2경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은 나라의 경사 제3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랫말처럼 남북통일이 될 것인데 그 소식도 문경에서 제일 먼저 듣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럼, 사서(史書)에 기록된 문경의 지명유래를 살펴보면
○ 선사시대(先史時代)
신석기시대부터 집단마을을 형성하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특히 산양 금천 주변 등 청동기시대 유물인 성혈과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 삼한시대(三韓時代)
마한·진한·변한 중에 변(弁), 진(辰)의 읍락국가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진한계 근기국(勤耆國)은 산양 지역이고, 진한계 호로국(戶路國)은 점촌과 호계지역이며, 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은 상주 함창지방이고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은 함창 또는 용궁지역이나 우리 시의 일부가 포함된다.

○ 삼국시대(三國時代)
서기 505년(지증왕 6년)에 신라 지방제도 확정으로 관문현(冠文縣)・관현(冠縣)・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 불렀으며 현재의 문경・마성지역이다. 가해현(加害縣)은 가은・농암지역이며 호측현(虎側縣) 혹은 배산성(拜山城)은 점촌시・호계면 지역이고, 근품현(近品縣)은 현재의 산양・산북지역이다. 고동람군(古冬攬郡) 혹은 고능군(古陵郡)은 상주시 함창읍(咸昌邑) 지역이며 점촌과 영순면의 일부 지역이 여기에 포함된다. 축산현(竺山縣) 혹은 원산(圓山)은 예천군 용궁지역으로 영순면의 일부 지역이 여기에 포함되며 난산현(蘭山縣)은 동로・산북면 일부가 포함된다.

○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서기 757년(경덕왕 16년)에 신라 지방제도가 9주 5소경, 117군, 293현으로 개편되면서 관산현(冠山縣)이 되었는데 현재 문경・마성지역으로 고령군(古寧郡 : 현 함창)의 영현이다. 가선현(嘉善縣)은 가은・농암지역으로 고령군(古寧郡)의 영현이다. 호계현(虎溪縣)은 점촌과 호계면의 일부 지역으로 고령군(古寧郡)의 영현이다. 가유현(嘉猷縣)은 산양・산북지역으로 예천군(醴泉郡)의 영현이다. 안인현(安仁縣)은 예천군 영현으로 동로면 일원과 옛 화장면 일원이다.

○ 고려시대(高麗時代)
신라 경덕왕이 관산현(冠山縣)이라 한 것을 940년(고려 태조 23)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개칭하고 983년(성종 2년)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하였는데 문희군(聞喜郡)과 가은현(加恩縣), 호계현(虎溪縣), 산양현(山陽縣), 영순현(永順懸)은 상주목의 속현이 되고 안인현(동로면과 옛 화장면)은 예천군에 폐합되고, 1018년(현종 9)에 상주에 편입시켰다가 후에 문경군(聞慶郡)으로 고쳤다. 공양왕 2년(1390)에 문경군(聞慶郡)에 감무를 두었으며 가은현(加恩懸)은 상주의 속읍에서 문경의 속읍이 되었다.

○ 조선시대(朝鮮時代)
서기 1414년(태종 14년)에 8도 체제를 완비하였는데 문경현의 감무가 현감으로 바뀌고 호계현을 합병하였다. 가은현은 문경현의 속현으로, 산양과 영순현은 상주의 속현으로 있었으며 1892년(고종 29년)에 문경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5월 26일에 8도 체제가 23부로 개편되고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군으로 지방행정 체제를 단일화하였다. 이때 문경이 상주, 용궁, 예천 등 이웃 군에 할양되어 문경군이 행정 편제상 없어졌다. 1896년(건양 원년) 8월 4일에 23부 체제가 다시 13도로 개편되고 문경군이 환원되었다. 1906년 1월 19일에 예천군의 동로면과 화장면이 문경군에 편입되었고 1906년 9월 24일 상주군의 산서, 산남, 산동, 산북, 영순면을 편입하였다.

○ 근․현대시대(近․現代時代)
서기 1914년 4월 1일에 용궁군의 서면과 함창읍의 동면 일부를 편입 현재의 시계(市界)를 형성(11면, 129리)하였고 1933년(경상북도령 33호)에 신북면이 문경면에 통합(10면, 129리)되었고 1949년 3월 10일에 문경군청이 문경읍 상리에서 호서남면 점촌리 232로 이전하였다. 1956년 7월 8일에 호서남면이 점촌읍으로 승격(법률 제393호)되었고 1963년 1월 1일 농암면 삼송리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편입되었으며 1968년 9월 3일 군 청사를 모전리 59-2번지로 신축 이전, 1973년 7월 1일 호계면 봉정리를 산양면으로 편입(대통령령 3789호)하였고 문경, 가은(이안면 저음리를 가은읍에 편입)이 읍으로 승격(대통령령 제6543호)되었다.

그리고 1986년 1월 1일 점촌읍이 호계면 별암 2리를 편입하여 점촌시로 승격(법률 제3798호)되었고 1989년 1월 1일 상주시 함창읍 윤직리 일부를 점촌시에 편입, 1995년 1월 1일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하여(법률 제4774호) 문경시가 되었다. 1999년 1월 1일 신기. 대성. 공평동을 통합하여 신평동을 설치하였고 2004년 1월 1일 점촌동, 중앙동, 신흥동, 신평동, 모전동을 점촌1·2·3·4·5동으로 동 명칭을 변경하였다.
현재 5개 동과 2개 읍, 7개 면이 있다.

그런데 문경의 지명 변천 과정을 보면서 눈여겨볼 흥미롭고 특별한 것은 “1895년(고종 35년) 5월 26일에 8도 체제가 23부로 개편되고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군으로 지방행정 체제를 단일화하였다. 이때 문경이 상주, 용궁, 예천 등 이웃 군에 할양되어 ”문경군”이 행정 편제상 없어졌다.” 다시 말해 우리 문경이 우리나라 역사상 1년여간 증발, 존재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1896년(建陽 元年) 8월 4일에 23부 체제가 다시 13도로 개편될 때 문경군이 환원되었으니 망정이지 우리의 삶의 터전인 문경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질뻔한 아찔한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문경(聞慶)이란 지명이 문경현지(聞慶縣誌)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보면 “恭愍王聞捷報於本縣仍改今名” 이란 기록이 있다. 이는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재위 1351년∼1374년)이 원나라 말 농민반란군인 홍건적(紅巾賊)의 난(亂)을 피해 복주(福州:현 安東)으로 파천(播遷)했다가 지역 순방 중 주흘산(主屹山)에 머물 때 홍건적을 물리치고 송경(松京: 現 開城)을 수복했다는 승전보 듣게 된 곳이라 하여 “들을 聞, 경사 慶” 자를 써서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 곳”으로 문경(聞慶)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삼국사기 권 34 잡지3에 “冠山縣 本冠縣 一云冠門縣 景德王改名 今聞慶縣”-“관산현은 본래 관현 또는 관문현이라 한다.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의 문경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今聞慶縣”를 주목해 보면 위의 공민왕 때 문경이란 지명을 처음 불리게 되었다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삼국사기[三國史記]는 1145년(17대-인종 23)경에 김부식(金富軾)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것인데 그때 이미 문경이라 지명을 사용하였으니 편찬 그 이전부터 문경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공민왕이 1361년 11월 19일에 홍건적이 침략, 몽진길에 올라 동년 12월 15일에 안동에 도착, 1362년 2월 신축일에 환도했다면 1362년 공민왕 환도 연도와 1145년 삼국사기 편찬 연도와의 차이는 217년이다. 정리하면 공민왕이 문경 땅에 머문 시기보다 217년 전에 이미 문경이란 지명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018년(현종 9)에 상주에 편입시켰다가 후에 문경군(聞慶郡)으로 고쳤다.”라는 기록으로 비교해도 127년의 시차가 있다. 정사와 설화로 이해해야 할지? 규명해야 할 숙제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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