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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문협, '조향순 시인 글을 쓰는 이유와 자세'란 주제로 2021년 제5차 문경문학아카데미 개최!
19일 오후2-4시 문경시립중앙도서관 2층 어학강의실 25명 참여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21년 06월 23일(수)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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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줄 좌에서 세 번째가 전 문경문협회장 조향순 시인임.
ⓒ 문경시민신문
문경문협(회장 김종호)은 지난 19일 오후 2시-4시까지 문경시립중앙도서관 2층 어학강의실에서 회원 25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 문경문협 회장을 지낸 조향순 시인을 초청, '글을 쓰는 이유와 자세'란 주제로 특강을 진행, 2021년 제5차 문경문학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이어 문경문학 제16집 출판기념식을 진행했다.
↑↑ 문경문학제16집 출판기념회
ⓒ 문경시민신문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글을 쓰는 이유와 자세

1. 글을 쓰는 이유

① 표현과 소통 욕구

기종이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뭔데?”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건 비밀이거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맹세까지 했다.”
기종이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미안하게두, 나는 정말 이 비밀만큼은 털어놓을 수 없다. 이 약속을 어기면 나는 죽게 된다. 이건 그만큼 중요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네가 내 목을 조르더라도 나는 말할 수 없다. 아니, 네가 뜨거운 부지깽이로 내 몸을 지진다 해도 어쩔 수 없어.”
내가 뭣 땜에 기종이에게 그런 가혹한 짓을 하겠는가!
“나는 네 목을 조르지도, 네 몸을 부지깽이로 지지지도 않아.”
“그럴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절대루 그러지는 않아.”
“이건 엄청난 비밀이다. 때문에 나는 도저히 이 비밀 만큼은 말할 수 없는 거야. 네가 나를 절벽에서 밀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해도 …….”
“나는 너를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싶지 않아.”
“진짜 민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협박을 한다는 말이야.”
“협박도 안 해!”
“하지만 너는 캐묻고 싶은 표정이잖아? 내 목에 칼을 들이대서라도 말야.”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내가 뭣 땜에 알려고 하겠어?”
“왜냐하면 이건 엄청난 비밀이기 때문이지. 이런 비밀은 누구나 알고 싶어 안달이 나기 마련이거든.”
- 위기철의 소설 『아홉 살 인생』중에서-

②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문정희)

③ 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을 우롱하기 위해 고안된 가장 멋진 도구다(기브리렐 가르시르케스의『백 년 동안의 고독』중에서

➃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된다, 관계도 확장한다, 위로와 평안을 준다, 다짐의 효과가 있다,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등(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 글쓰기)

➄ 나에게 글쓰기는 살기 위한 도구였다. 나에게 글쓰기는 한 줄기 빛이었다. 세상과 한 판 붙어볼 자신감이 생겼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면 늘 글을 썼다. 못난 ‘나’라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백지가 채워질 때 절망은 사라졌다.(이은대의 내가 글을 쓰는 이유)

2. 글을 쓰는 자세

① 글을 잘 짓는 사람은 아마도 병법을 알았던 것인가.

글자는 비유하면 군사이고, 글 뜻은 비유하면 장수이다. 제목은 적국(敵國)이고 전고(典故)와 고사는 전장의 보루이다.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묶어 문장을 만듦은 대오를 편성하여 행진하는 것과 같다. 음으로 소리를 내고 문채(文彩)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치고 깃발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조응(照應)은 봉화(烽火)에 해당하고, 비유(譬喩)는 유격병에 해당하며, 억양 반복은 육박전을 하여 쳐죽이는 것에 해당하고, 파제(破題)를 결속(結束)하는 것은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적을 사로잡는 것에 해당한다. 함축을 귀하게 여김은 늙은 병사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사를 떨쳐 개선하는 것이다.
무릇 장평(長平) 땅에서 파묻혀 죽은 조(趙)나라 10만 군사는 그 용맹과 비겁함이 지난날과 달라진 것이 아니고, 활과 창들도 그 날카로움과 무딘 것이 전날에 비해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염파(廉頗)가 거느리면 적을 제압하여 승리하기에 충분했고, 조괄(趙括)이 대신하면 자신이 죽을 구덩이를 파기에 족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군사를 잘 쓰는 장수는 버릴만한 군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사람은 이거저것 가리는 글자가 없다. 진실로 훌륭한 장수를 만나면 호미· 고무래· 가시랭이·창자루를 가지고도 굳세고 사나운 무기로 쓸 수 있고, 헝겊을 찢어 장대에 매달아 동이면 훌륭한 깃발의 정채를 띠게 된다. 진실로 올바른 문장의 이치를 깨치면 집사람의 예사말도 오히려 근엄한 학관(學官)에 펼 수 있으며, 아이들 노래와 속언도 훌륭한 문헌에 엮어넣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문장이 잘 지어지지 못함은 글자 탓이 아니다.
자구(字句)의 아속(雅俗)을 평하고 편장(篇章)의 고하(高下)만을 논하는 자는 실제의 상황에 따라 전법을 변화시켜야 승리를 쟁취하는 꾀인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비유하자면 용맹하지 못한 장수가 마음 속에 아무런 계책(計策)도 없다가 갑자기 적을 만나면 견고한 성을 맞닥뜨린 것과 같다. 눈앞의 붓과 먹이 꺾임은 마치 산 위의 초목을 보고 놀라 기세가 꺾인 군사처럼 될 것이고, 가슴 속에 기억하며 외던 것은 마치 전장에서 죽은 군사가 산화하여 모래밭의 원숭이나 학으로 변해버리듯 모두 흩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짓는 사람은 항상 스스로 논리를 잃고 요령(要領)을 깨치지 못함을 걱정한다. 무릇 논리가 분명하지 못하면 글자 하나도 써내려가기 어려워 항상 붓방아만 찧게 되며, 요령을 깨치지 못하면 겹겹으로 두르고 싸면서도 오히려 허술하지 않는가 걱정하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소단적식인(騷壇赤식引)중 일부

②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 비(非) 천재들을 위한 문장강화(文章講話)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

언젠가 1980년대 문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시인과 찻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평소에 글쓰기와 관련하여 품고 있던 궁금증을 이렇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 명료했다. “단박에 써야 합니다. 개칠하면 시가 아니지요.” 시간이 많지 않았던 탓에 글쓰기와 관련된 그의 비결을 더 이상 캐물을 수는 없었지만, 천재형 작가에 대한 선모(羨慕)의 감을 안고 헤어졌던 기억이 난다.

③ 팔백 구십 번 퇴고한 시

개칠(改漆)은 한 번 칠한 것을 고쳐 칠하는 일을 말한다. 붓글씨를 쓰거나 사군자를 칠 때, 한번 붓이 지나간 자리에 붓을 덧대는 일이 개칠이다. 이는 일필휘지(一筆揮之)와 기운생동(氣韻生動)을 특징으로 하는 문인화 정신을 훼손하는 일로서, 일종의 부정행위에 해당한다. 개칠은 아무리 교묘하게 해도 화선지를 뒤집어서 햇볕에 비추어보면 바로 티가 나기 마련이다.
개칠을 허용치 않는 문인화와 달리, 쇄소(瑣小)한 붓놀림으로 얼마든지 개칠을 할 수 있게 허용하는 그림은 공필화(工筆畵)라 부른다. 이 명칭에는 사대부-문인의 관점에서 중인 계층의 직업 화가를 바라보는 폄하의 시선이 은연 중 깃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 교정을 어슬렁거리며 온갖 학회와 강연회에 고개를 들이미는 시인 한 명이 있다.「소를 웃긴 꽃」이라는 시를 쓴 윤희상 작가이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보고, 듣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모토인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윤 시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시상(詩想)도 좋아야 하지만, 퇴고(推敲)를 많이 할수록 점점 더 좋아지지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소를 웃긴 꽃」은 몇 번이나 퇴고하셨나요?” 그가 말했다. “팔백 구십 번이오.”
890번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개칠하면 시가 아니라던 천재 시인의 말에 주눅 들었던 자소(自小)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개칠하고 덧칠하며 끙끙대는 사람이 나 혼자인 줄 알았더니, 시 한편 쓰는 데 무려 890번이나 퇴고하는 시인이 있다는 사실은 한 가닥 위안으로 다가왔다.
퇴고 한 번 하지 않고 시를 단박에 쓰는 일은 정말 가능할까? 퇴고를 많이 한 시는 단박에 쓴 시보다 가치가 덜한 것일까? 시를 쓸 때 개칠하지 않고 단박에 써야 한다는 입장과 가급적 퇴고를 많이 해야 한다는 입장은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할까?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소를 웃긴 꽃> 전문 / 윤희상

④ 나의 소년 시절과 작문 시간 트라우마

대학 시절에 고학번 선배들이 들려주는 조동탁(趙東卓: 1920-1968, 조지훈 시인의 본명)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전설 그 자체였다. 술을 마시고 통금을 넘겨 귀가하다가 성북동 개천 다리에서 굴러 떨어진 일이라든지, 학생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교문에 오줌을 누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글쓰기와 관련된 일화를 통해 그의 천재성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하루는 출판사 사환이 원고를 받으러 학교로 찾아왔는데, 선생은 아직 간밤의 숙취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사환을 책상머리에 세워둔 채 입에 줄담배를 물고서 원고지 15매를 단숨에 회오리바람처럼 써서 내주었다고 한다.

선배들이 말하는 “단숨에”가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색한 단어 위에 두 줄을 긋고 고쳐 쓰거나, 보충이 필요한 곳에 삽입 표시를 하고 새 문장을 써넣는 일도 하지 않은 채, 정말로 “회오리바람처럼” 일필휘지로 글을 내갈겨 썼다는 말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날 선생이 퇴고를 했든 안 했든 간에, “단숨에 회오리바람처럼” 글을 써서 내주었다는 이야기는 나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띄엄띄엄 또는 머뭇머뭇하면서 “썼다/지웠다”를 반복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둔재(鈍才)형 글쓰기는 국민학교 작문 시간에 각인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기는 아직 봉건 시대의 억압과 전체주의적 폭력이 공기처럼 일상화된 야만의 계절이었다. 작문 과목이 든 날에는 두꺼운 검정 표지로 철(綴)한 원고지 묶음을 준비해가야 했다. 돈이 귀한 시절이라 원고지를 가져오지 못하는 급우들이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등을 대나무 잣대로 사정없이 내려치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뒤로 나가 손을 들고 서 있게 하셨다. 열심히 원고지에 무언가 썼다 지웠다 하는 급우들의 등짝만 바라보다, 겨우 손등의 통증이 잊혀질 만하면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
6학년 때의 경험은 최악이었다. 선생님은 원고지를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을 발가벗겨 일렬종대로 세운 후, 옆 반 여학생 교실을 한 바퀴 돌고 오게 하셨다. 고작 열네 살에 불과했지만 은근히 눈여겨보던 여학생도 있었던 시절이라 그때 느꼈던 수치심은 아직도 귓불을 화끈거리게 한다. 요즘 같으면 아동 학대와 성추행으로 큰 일이 되겠지만 그때는 아무도 문제 제기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겪는 수모라기보다, 그저 선생님 말씀을 어겨서 받는 벌이라고만 생각했다.
작문 시간에 제시되는 주제도 기껏해야 애국심, 충성, 반공, 방첩, 불조심처럼 군부대 담벼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어들이었으며, 소년기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북돋아주는 주제는 받아본 기억이 없다. 하늘과 바람과 별에 대해서, 또는 흰 구름과 딱정벌레와 연둣빛 잎새에 대해 쓰라고 했더라면 지금 나의 글쓰기는 크게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지방 도립 대학에서 개최하는 백일장에 나가 차상(次上)이니 차하(次下)니 하는 상을 받아본 적도 있지만, 정말로 글을 쓰려고 대회에 나갔던 것은 아니다. 답답하고 침침한 교실에서 벗어나 하루 종일 신록의 그늘 아래서 빈둥거리는 일이 너무도 자유롭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비겁한 핑계일지 몰라도, 나는 내 글이 건조하고 무딘 이유가 전적으로 소년 시절 작문 시간에 겪었던 심리적 상흔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고지만 접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현상은 50년이 지난 요즘에도 여전하다. 물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어도 훌륭한 문필가가 된 예외적 인물이 더러 있기도 하지만.

⑤ 지훈 시인이 말하는「승무」의 비밀

대학 시절 교련은 백해무익하기 짝이 없는, 시간 낭비만 초래하는 과목이었다. 차라리 총검술 대신 펜대를 굴리게 하거나, 총기 분해 대신 인수 분해라도 가르쳤더라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과 문화 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그래도 교련 때문에 덕 본 일이 하나 있다. 문과대학의 여러 과 학생들이 모여 함께 훈련을 받다 보니 타과생과도 친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알게 된 국문과 학우가 소개해준 책이 조동탁 선생의『시의 원리』이다. 여기서 선생은「승무」라는 한 편의 시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체험 고백의 형식으로 기술함으로써, 자신의 작시(作詩) 비밀을 독자들에게 숨김없이 털어놓고 있다.
선생은 열아홉 살에 승무를 시화(詩化)해보겠다는 뜻을 품은 이래, 한성준의 승무, 최승희의 승무, 그리고 수원 용주사 여승의 승무를 보러 다녔다고 한다. 여러 차례 춤을 감상하고서도 영 붓 들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름에 김은호 화백의「승무도」앞에서 몇 시간을 서성인 뒤에야 비로소 78자의 초고를 얻게 되었다 한다.
그 뒤에도 춤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표현할 구상을 잡지 못하다가, 그해 가을 구왕궁 아악부에서 연주하는「영산회상(靈山會上)」의 가락을 듣고 비로소 전체 플랜(plan)을 세우게 되었고, “사흘 동안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스무 줄로 된 한 편의 시를 겨우 완성하게 되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를 구상한 지 꼬박 열한 달, 그리고 붓을 든 지 일곱 달만의 일이니, 모두 합쳐 1년 반 만에 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승무」가 이루어지기까지의 지난한 여정으로 볼 때, 아무리 시상이 참신하고 산뜻해도, 체제 구성이나 시어의 선택 등 창작 과정에서 치열한 퇴고의 노력이 없어서는 안 됨을 알 수 있다. 출판사 사환을 책상머리에 세워둔 채 “단숨에 회오리바람처럼” 글을 써서 주었다는 일화가 마치 ‘퇴고 무용론’처럼 전승되는 일은 선생의 실제 창작 과정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백색 신화에 불과하다.
글을 쓰며 줄담배를 피워댔다는 이야기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퇴고를 위한 갈등과 고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음을 뜻한다. “회오리바람처럼” 써내려갔다는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회오리바람은 아무 물건이나 다 쓸어안고 가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가는 것도 아니다. 회오리바람은 버릴 만한 것은 버리고, 가지고 갈 만한 것은 가지고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대단히 선택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회오리바람의 운동 방식은 퇴고의 과정과도 비슷하다.

⑥ 천고절창(千古絶唱)의 글쓰기 비밀

소동파는 당송 8대가 중 한 사람으로 그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를 쓴 천고의 절창으로 알려져 있다. 1082년, 그는 유배지인 황저우(黃州) 부근의 장강에 배를 띄우고 덧없는 인생과 자연의 무심함을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잘라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한 잎 조각배를 띠우고 (駕一葉之片舟)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니 (擧匏樽以相屬)
하늘과 땅 사이에 기우(寄寓)하는 하루살이 인생이요 (寄蜉蝣於天地)
검푸른 바다에 떠다니는 좁쌀처럼 미미한 존재로다 (渺蒼海之一粟)
잠깐 사이에 스쳐가는 내 삶을 슬퍼하며 (哀吾生之順臾)
가없이 흘러가는 장강 물만 시샘하노라 (羨長江之無窮)

언젠가 후베이(湖北) 지역을 답사하는 기회에 배를 타고 적벽 근처를 유람한 적이 있다.「적벽부」의 이 구절을 읊조리다 문득, 1000년 전에 소동파는 이 글을 지을 때 얼마나 걸렸을지 궁금해졌다. 귀국 후에 이리저리 책을 보다 알게 된 일이지만, 이태준 선생이 지은『문장강화(文章講話)』에서는「퇴고의 진리성」이라는 소제목 아래 소동파의「적벽부」가 탄생하게 된 비밀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 사람들은 일필휘지(一筆揮之)니 문불가점(文不加點)이니 해서 단번에 써내는 것을 재주로 여기지만, 그것은 결코 경의를 표할 만한 재주도 아니려니와, 또 단번에 쓰는 것으로 경의를 표할 만한 문장이 나올 수도 없는 것이다. 소동파가「적벽부」를 지을 때 친구가 와서 며칠 만에 지었냐고 물으니, 며칠은 무슨 며칠, 지금 단번에 지었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파가 밖으로 나간 뒤에 자리 밑 불쑥한 데를 들쳐보니, 여러 날을 두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한 초고가 한 삼태기나 쌓여 있었다. (「文章講話」, 京城: 文章社, 昭和15年, 215쪽) -

『문장강화』에서 폭로하는 소동파의 글쓰기 비밀은 충격적이다. 말로는 “단번에 지었다”라고 뽐내지만, 사실은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끝에 얻어낸 “피땀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태준 선생은 “단번에 써내는 것은 경의를 표할 만한 재주가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단번에 쓴다고 해서 경의를 표할 만한 문장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라고 다시 강조하면서, 섣부른 천재성이 초래할 수 있는 오만과 나태를 경책(警責)하고 있다.

⑦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글쓰기와 관련하여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에피그램은 기억해둘 만한 명언이다.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혼(魂)임을 알게 되리라. (중략) 피와 잠언으로 쓰는 자는 자기 글이 읽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피’란 독일 관념론에서 말하는 ‘머리’만의 순수 이성이 아니라 치열하게 ‘온몸’으로 느끼고, 신음하고, 불타오르는 혼신의 노력에 다름 아니다.

송 대의 구양수(歐陽修)는 글쓰기의 비결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세 가지를 들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치열하게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는 뜻이다. 니체의 경구와 마찬가지로, 섣부르게 “머리만 믿는 천재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오만과 나태를 경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태준은 『문장강화』에서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은 문장의 진리다. 이 진리를 버리거나 숨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두 번 고친 글은 한 번 고친 글보다 낫고, 세 번 고친 글은 두 번 고친 글보다 낫다는 것은 진리다.”라고 말한다. 그가 되풀이하는 퇴고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마치『중용』구절을 그대로 베껴놓은 듯하다.

남들이 한 번에 해내면 나는 백 번에라도 해낼 것이며 (人一能之, 己百之)
남들이 열 번에 해내면 나는 천 번에라도 해낼 것이다 (人十能之, 己千之)
이 도리에 능해진다면 (果能此道矣)
비록 우둔한 자도 반드시 총명해질 것이고 (雖愚必明)
비록 유약한 자도 반드시 강인해질 것이다 (雖柔必强)

⑧나의 작문훈(作文訓)

올겨울 2월, 전주 한옥마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모처럼 지방 나들이를 했다. 최명희 문학관 전시실에서 발견한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말이 무척이나 담대하면서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수행해온 과거 글쓰기에 대한 고백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미래 글쓰기에 대한 약속으로 읽혀졌다. 아쉽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기는 하였지만, 무척 공감이 가는 구절이었다.
글쓰기에 ‘단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박’이란 자칭 천재들의 자기 현시적 부풀리기에 불과하다. 그러한 과장적 언사의 이면(裏面)에는 치열한 고민과 갈등, 그리고 수없이 많은 개칠과 퇴고의 흔적이 감춰져 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대문호들이 남긴 ‘퇴고의 흔적’을 수고(手稿)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찾아본 손글씨 흔적 가운데 가장 어지럽고 너저분하며 고민과 갈등의 흔적이 역력하게 엿보이는 ‘수고’는 단연코 도스토옙스키의 것이다. 인터넷 검색 창에 “Dostoevsky’s manuscript”라고 한번 입력해보시라. 검색해본 독자들은 아마도 다들 나의 평가에 동감하게 될 것이다.
대문호들의 육필 원고에 드러난 퇴고 흔적을 통해 본다면, 단숨에 ‘잘 쓴 글’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열심히 ‘잘 고쳐 쓴 글’만 존재할 뿐이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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