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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문경지부(회장 조향순), 제5회(제14차) '2017 문경문학아카데미’ 개최
황봉학 전 문경예총회장(60 시인) 초청 특강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17년 05월 14일(일)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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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한국문인협회문경지부(회장 조향순)는 지난 13일 오전 11시 문경시립중앙도서관 2층 어학강의실에서 황봉학 전 문경예총회장(60 시인)을 초청 강사로 모시고, ‘곡선의 시를 쓰자-곡선의 힘’이란 주제로 제5회(제14차) '2017 문경문학아카데미’를 개최하였다.

‘문학으로 감성을 충전하는 날’로 개최되는 ‘2017 문경문학아카데미’는 지난 1월 14일 제1회를 시작으로 이번 12월 9일까지 총 12회 실시된다.

이날 황봉학 강사의 특강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드러운 직선 / 도종환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사철 푸른 홍송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곡선의 힘 / 서안나

남한산성을 내려오다 곡선으로 휘어진 길을 만난다

차가 커브를 도는 동안
세상이 한쪽으로 허물어지고
풍경도 푸름의 중심을 놓아버린다

내 생의 무게 중심이 삽시간에 흐트러진다
나는 나에게서 한참 멀어져 있다

나는 모서리처럼 몸을 세우고 곡선의 격렬함과 싸운다
내 몸에서 중심을 붙잡으려 손길들이 뛰쳐나온다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던
수많은 내가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나에게서 내가 이탈된다

커브길을 돌아 나에게 되돌아오는 몇 초 동안
나의 경계를 넘어서고
나의 슬픈 배후까지 슬쩍 엿보게 하는
부드러운
곡선의 힘

<한옥이 양옥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부드러운 곡선에 있다.>

시를 치열하게 쓸 필요가 있는가?

나는 나에게서 시를 배우는 분에게서 “선생님, 시 때문에 울어 본 적이 있습니까? 말 그대로 눈물 펑펑 쏟고 내가 이렇게 막막하고 재능이 없고 생각도 짧고 통각에 눈물만 나고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생각도 못하고 감정만 있습니다.” “능력도 안 되면서 큰 그림만 그리고 있습니다. 음도 모르면서 교향곡 작곡하는 것처럼” “김종삼의 시를 읽다가 전율하고 당선시를 읽다가 절망하고 그래도 그 길을 질기게 가고 싶고 내 시는 너무 조잡해서 스승님께 그렇게 보여주고 싶던 시들이 하나 보여줄 게 없습니다.”

나는 그 분에게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시를 즐기십시오. 게임을 하듯 즐기시기 바랍니다.” 나도 한때 이 분처럼 시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극한 상황과 부딪쳐 보아야 한다고 하여 공동묘지에서 밤을 세워본 적도 있고,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하여 20여 개 외국과 우리나라 전국 구석구석을 미친 듯이 돌아본 적도 있고, 유명한 시인들을 찾아다니고,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시를 토론한답시고 언쟁을 벌이고, 닮고 싶은 시인의 시집을 사서 수십 번씩 필사를 하고, 하루 100여 편의 시를 매일 읽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마지막 도달한 시에 대한 결론은 시를 즐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의 사명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지 못 한다면 도대체 시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하고 물으신 정진규 시인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곡선의 시’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10여 년의 습작 끝에 ‘경북문단 작품상’ ‘애지문학 작품상’에 이어 제가 ‘현대시학’에서 출판한 ‘주술사’가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어 전국도서관과 작은 도서관, 사회복지지설 등 3,600여 곳에 보급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제가 주목한 시 창작에 사용하는 기법은 완곡어법, 모순어법, 언어유희, 음풍농월, 음담패설 등이며, 읽는 분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울음이 배긴 시’ ‘감동이 물든 시’ ‘유머가 꿰인 시’ ‘교훈이 있는 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부드럽게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곡선의 시’를 써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한국문단을 뒤흔들었던 ‘미래파’ 시인들의 시를 나도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애초 불통을 염두에 두고 쓴 시들이 과연 시인의 사명을 다하는 것인가? 라는 답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제시하는 시들을 함께 읽으면서 제가 어떤 시들에 주목을 했는지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완곡어법

희한한 짐승 / 황봉학

배를 맞대고 강아지를 하는 짐승이 있다
얼굴을 마주 보며 강아지를 하는 짐승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강아지를 해대는 짐승이 있다
강아지만 하고 새끼를 안 낳는 짐승이 있다
사자, 호랑이는 절대 아니다
뱀과 메뚜기도 절대 아니다
그래도 강아지를 너무 자주 해서 부끄러운지
얼굴에 뭔가를 덕지덕지 바르고
성형까지 한다고 한다
이 지구 위에는 수없이 많은 짐승이 있는데
짐승 중에서 그 짐승의
이름을 아는 짐승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배를 맞대고 얼굴을 마주보고 강아지를 해대니
아마도 짐승 축에 끼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강아지 : 남녀의 성행위.

물속의 집 / 이상국

그 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 온 서른 세 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며 내렸으며
때론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모래기*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 마리 새떼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 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울산바위가 물속의 집 뜨락에
오래 가는 놀빛을 떨어뜨리고 가거나
산 그림자 속 화엄사 스님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가 늦게 돌아가기 때문에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물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모래기: 영랑호 주변에 있는 마을 이름

-모순어법

반가사유 / 류근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현실도 미래도 종말도 아무런 희망 아닌 여자와
외항선 타고 밀항한 남자 따위 기다리지 않는 여자와
가끔은 목욕 바구니 들고 조조영화 보러 가는 여자와
비 오는 날 가면 문 닫아걸고
밤새 말없이 술 마셔주는 여자와
유행가라곤 심수봉밖에 모르는 여자와
취해도 울지 않는 여자와
왜냐고 묻지 않는 여자와
아,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저문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여자와
그러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낮술 마시는 여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原을 向하여 흔드는
永遠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 슬픔의 봄을

진달래꽃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언어유희

안면도 / 황봉학

안면도 없는 안면도를 갔네
안면도 없는 갈매기와 놀았네
안면도 없는 파도와 놀았네
안면도 없는 손님에게 안면도는 파도를 가르고 길을 열어 주었네
안면도 없는 할미ㆍ할아비섬에 들어가 놀았네
안면도 없는 조개를 줍고
안면도 없는 몽돌을 주웠네
안면도 없는 할머니의 굴을 사 먹었네
안면도 없는 바닷가에는
안면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일몰을 기다리네
안면도 없는 바람이 아는 체하네
안면도 없는 배가 들어오고 나가네
안면도 없는 안면도에는
안면도 없는 노을이
안면도 없는 나를 기다리고
안면도 없는 일몰이
안면도 없는 사람들을 기다리네

안면도 없는 안면도에는
그래서
안면이 없어도 안면이 부끄럽지 않네

<언어유희가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

첫째: 형식과 내용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둘째: 독자의 공감대를 불러올 수 있는가.
셋째: 전위성을 띠고 있는가.
넷째: 얼마나 자기비판에 입각하는가(셋째와 결부돼 전위란 본질적/시사적으로 그것이 하나의 앙가주망이며 아방가르드이기 때문이다).

-음풍농월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 / 오태환

삐뚜루만 피었다가 지는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백금의 물소리와 청금의 새소리가 맡기고 간 자리 연분홍의 떼가, 저렇게 세살장지 미닫이문에 여닫이까지 옻칠경대 빼닫이 서랍까지 죄다 열어 젖혀 버린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맨살로 삐뚜로만 삐뚜로만 저질러 놓고,
다시 소름같이 돋는 참 난처한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발바닥에서 겨드랑이까지
해끗한 달빛도 서늘한 그늘도 없는데.
맨 몸으로 숭어리째 저질러 놓고 호미걸이로 한사코 벼랑처럼 뛰어내리는 애먼 그리움,
천지간의 우수리, 금니도 다 삭은 연분홍 연분홍 떼의

-음담패설

폭설(暴雪) /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울음이 배긴 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두꺼비 / 박성우

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녀석을 껴안고 주
무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살짝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독을 뿜어대는 통에 내 양 눈이
한동안 충혈되어야 했다 아버지, 저는 두꺼비가 싫어요

아버지는 이윽고 식구들에게 두꺼비를 보여주는 것조
차 꺼리셨다 칠순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날이 새기 전에
막일판으로 나가셨는데 때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 자전거 손잡이에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아버지는 지난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
나 잔디만 깨어났다

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

어머니의 베틀 / 황봉학

새벽이면 베 한 필이 완성되었습니다
밤을 새워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청상(靑孀)이 된 자신의 슬픔을 베로 짰습니다
그녀가 짠 베는 언제나 결이 곱고 부드럽다며
시장에 내다 놓기 무섭게 팔려나갔습니다
한 올 한 올 베가 짜질 때마다
그녀의 눈물도 베와 함께 짜졌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팔려나간 베는
자식들의 밥이 되고 옷이 되고 환한 웃음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재주는 오직 베를 짜는 것
그리고 밤을 새우며 일을 하는 것
그녀가 짠 베가 몇 필이나 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 나는 어머니께서 짜신 베가
담장 안 앵두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부드럽고 윤기가 나는 아름다운 베 한 필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그 고운 베 위에 앉았습니다
또 한 필의 베가 팔려나갈 모양입니다.

-상상을 먹은 시

담석 / 최금진

내 어두운 쓸개에 어느 운석 하나가 날아와 박힌 것인가
엑스레이 필름 안에 얌전히 누워 있는 7센티미터의 돌
쓸개의 쓰디쓴 즙을 흘리며 패배를 견디는 동안
백만 년이나 떠돌다 제풀에 지쳐 내 몸으로 떨어진 별 하나
내 몸이 저 돌멩이 하나를 제대로 받아냈구나
눈 오는 새벽, 비 오는 밤, 내가 보았던 그 많은 어둠이
수천만 광년을 달려와 지금 내 속에 와서 박힌 거구나
달려갈 곳을 놓친 별 하나가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덜덜 떨며 봄을 기다린다, 방치해 둔
깨진 창문들이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눈을 감는다
부처에는 이르지 못하고, 사리는 되지 못한
단단한 고집과 울화가 종유석처럼 길게 돋아나
내 몸을 뚫고 들어와 마침내 정착의 뿌리를 내렸구나
새벽에 아랫배가 아파서 눈을 뜨면
몸통도 없는 귀신이
내 긴 그림자를 받쳐 들고 시중들며 뒤를 따른다
까맣게 불탄 꼬리를 개처럼 흔들며

시인들 / 황봉학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들이 모여
구름 탁자 앞에서
文語 등뼈를 고아 만든 탕을 먹고 있네
∬가 말 했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뱀의 날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ㆄ이 말 했네
아니지요, 미라의 붉은 피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도 끼어들었네
적어도 시라면 바람의 똥 정도는 들어 있어야겠지요
∀이 무거운 소리로 보탰네
모래의 혈관까지 파고드는 강력한 태풍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그날,
고양이가 부른 멍멍이 노래를 보너스로 듣고
후식으로
호랑이 아가미로 만든 수프를 먹고
물의 뼈로 만들었다는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며
요즘 수컷들의 자궁에 대해 왈가왈부하다가

지렁이 갈비뼈로 만든 펜으로 시를 쓰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다 같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헤어졌다

내일 물구나무선 채 태어날
¿ 시집 속으로

-감동이 물든 시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
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누구를 떠났으므
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남감해하실
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 몸, 온 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
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쓰셨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
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아배생각 / 안 상 학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나?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미안하다, 선생아 / 황봉학

그녀는 늘 추워 보였다
따뜻한 나라에 살던 그녀가
한국에서 맞는 겨울은 언제나 살을 에는 아픔이었다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사십 대의 농촌 노총각과 결혼을 했다
문화가 틀리고 말은 통하지 않고
남편은 답답함을 매로 다스렸다
첫아이를 출산하는 날도 남편은 만취해 잠이 들었고
밤새도록 산통을 겪고 낳은 아이의 탯줄을 직접 자르며 그녀는 울었다
그런 그녀가 직접 과수원에서 수확한 과일을 실어내기 위하여 운전을 배운다
가난한 나라 베트남에서 자란 탓에
자동차 문화가 낯설기만 한 그녀
필기시험에 열두 번이나 떨어지고
기능 교육 때마다 시동이 꺼지고 탈선을 해도
연신 강사에게 핀잔을 들어도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울먹이며 오늘도 운전을 배우는 그녀

교육이 끝나고 차에서 내리면 인사를 잊지 않는다
"미안하다, 선생아, 안 잘해서……”

-유머가 꿰인 시

시인 본색 / 정희성

누가 듣기 좋은 말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참 빨랐지 그 양반 / 이정록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 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이게 이년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 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앗싸, 죽은 여자 / 황봉학

나의 지갑 속에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어떤 때는 죽은 남자를 팔아 산 여자를 사기도 하는데
앗싸노래방에서 도우미를 신청하고 죽은 남자를 내밀면 아주 효험이 있다.
운이 좋으면 쭉쭉빵빵인 아가씨를 사기도 하고
막 요염이 덧칠해진 30대 여인을 달려오게 할 수도 있다.
싱싱하게 서비스하던 여자들이 시들해지면
나는 그 여자들에게 죽은 남자를 덤으로 써먹기도 한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아주 근사하게 생긴 남자인데
여자들의 브래지어 속이나 핫팬츠 속에 찔러 넣어주면 효과가 아주 좋다.
그 남자의 능력은 여자들이 엉덩이를 흔들거나 살짝살짝 가슴을 보여주는 정도의 약효는 있지만, 더 이상의 효과는 없다.
그때는 할 수 없이 죽은 여자를 불러내어야 한다.
내가 죽은 여자를 두세 겹으로 겹쳐 흔들면 팔려온 여자는 마술에 걸린 듯 옷을 벗는다.

여성 상위시대!
여자들은 콧대가 점점 높아진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부적처럼 죽은 여자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바야흐로
죽은 여자가 산 여자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교훈이 때린 시

늙은 거미 / 박제영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장을 뽑아서 거미줄을 만드는 거란다. 그 거미줄로 새끼들 집도 짓고 새끼들 먹이도 잡는 거란다. 그렇게 새끼들 다 키우면 내장이란 내장은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는 것이지. 새끼들 다 떠나보낸 늙은 거미가 마지막 남은 한 올 내장을 꺼내 거미줄을 치고 있다면 아가,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수의를 짓고 있는 거란다.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자신을 위해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거미줄이란다. 거미는 그렇게 살다 가는 거야. 할머니가 검은 똥을 쌌던 그해 여름, 할머니는 늙은 거미처럼 제 거미줄을 치고 있었지.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애기똥풀 / 안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 꽃 / 고 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산에도 척하는 것들 / 황봉학

길쭉한 바위 하나가
남근인 척 서 있다

그 옆에
생강도 아닌 생강나무가 생강 향기를 풍기며 서 있다
오이도 아닌 오이풀이 오이 향을 풍긴다
노루귀도 아닌 노루귀가 노루 흉내를 내고 있다
국수도 아닌 국수나무가 국수인 척 서 있다
화살도 아닌 화살나무가 화살인 척하고 있다
박쥐도 아닌 박쥐나무가 박쥐 흉내를 내며 서 있다
쥐똥도 모르는 쥐똥나무가 쥐똥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그 곁으로

짝퉁 등산화들이

척척
척척척
걸어간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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