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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문경지부(회장 조향순), 제5회 ‘2016 문경문학아카데미’ 개최
지난 13일 오전 11시 문경시립중앙도서관 2층 강의실 김시종 원로 시인 초청강사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16년 08월 15일(월)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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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줄 모자 쓰신 분이 김시종 전 문경문협회장님이시다.
ⓒ 문경시민신문
한국문인협회문경지부(회장 조향순)는 지난 13일 오전 11시 문경시립중앙도서관 2층 강의실에서 김시종 원로 시인을 초청 강사로 모시고, 제5회 ‘2016 문경문학아카데미’를 개최하였다.

‘문학으로 감성을 충전하는 날’로 개최하는 ‘2016 문경문학아카데미’는 지난 4월 9일 제1회를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총 9회 실시된다.

김시종 원로 시인의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서점의 재발견

인구 5만명의 문경시 점촌동에 달랑 새 책방이 한 군데 밖에 없어 문화적인 측면에서 허전했는데, 지난해에 아담한 헌책방이 둥지를 틀어 서점도 외톨이를 면할 수 있게 됐다.

고서점 주인도 고서(古書)처럼 정겨운 인상을 지니셔서 그야말로 금상첨화 격이다. 고서점은 단순한 헌책방이 아니라, 서적 박물관이다.

웃음의 말로 없는 책 말고는 다 있다. 판매가격도 정가의 30%로 서비스를 해주어, 책 구입에 부담감을 덜어준다.

독서를 멀리하는 현대인의 문화적 괴팍성 때문에 웬만한 시골 군·읍에는 서점이 한 곳도 없는 무의촌 아닌 무서점촌이 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처음 발견한 헌책방 앞에서 반가움을 누를 수 없어 고서점에 들어가 진열된 서가(書架)를 훑어보니, 첫눈에 A학점이었다.

서점 주인도 인상이 온순하고 슬기로워 보이고, 연세도 예순 고개를 넘겨 서점 주인으론 적격자로 보였다.

점촌동에 고서점(헌책방)이 생긴 것이 필자에게 얼마나 반가운지, 지난날에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멀리 이사 가서 한참 동안 많이 섭섭했는데, 그 이웃이 다시 곁으로 돌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1956년 필자는 중3이었는데, 요새 아동문고로 출판되는 소년소녀세계명작문고도 당시는 출판문화 미숙으로 발간되지 못한 출판 불모지였다.

다행히 바로 옆집에 이장사무실이 있어, 당시 일간신문인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연합신문, 매일신문이 매일 들어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주인 없는 이장사무실에 들어가 무조건 이들 신문을 정독(精讀) 아닌 남독(濫讀)을 했다.
당시 신문에는 한자가 많았지만, 한자실력을 갖춘 중3이었던 필자는 한자 때문에 불편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신문을 읽으면서 신춘문예 제도가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중학교 졸업 무렵인 1957년 초부터 학원세계명작전집 출판이 개시되어, 필자가 맨 처음 읽은 세계명작소설이 ‘집 없는 아이’였다.

학교 공부보다 소설에 흥미가 깊었던 필자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공부벌레보다는 차원 높은 삶을 살게 되었다.

육군에서 제대하고 단칸방 곁방살이의 어려움 속에서도 필자의 책꽂이엔 여나무 권의 필독 문학 서적이 어려운 현실을 이길 수 있는 막강한 힘이 되어 주었다.

지난날엔 필자를 감동시켰던 책이 지금 집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고서점엔 추억의 책들이 건재(健在)하여 기쁨을 더해준다.

신문-TV를 악취로 도배하는 사건-사고의 주인공들은 배가 빈 것이 아니라, 골이 빈 사람이 많다.

영양실조보다 양서를 접하지 못한 독서 실조증이 인격파산자를 대량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CCTV보다 독서하는 국민들이 되도록 하는 것이 대형범죄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필자는 평생 재산증식엔 관심을 둔 적이 없다. 남은 것은 책밖에 없다. 많은 책이 잘 정리-정돈 되지 않아 당장 읽고 싶어도 책을 찾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도서관을 곧잘 찾는다.

고서점에서 얻은 보물목록 가운데 도서지(섬), 하천일람, 산유화(정비석), 저 하늘에도 슬픔이(이윤복), 구름은 흘러도(안말숙), 현대문학 창간호, 해(박두진), 홍길동전(정비석), 소년야사(학원사), 날개 없는 천사(박계주), 새 벗 창간호, 자유문학 창간호 등이 필자가 고서점에서 낚은 대어(大漁)들이다.

헌책방(고서점)이 삶의 지혜와 기쁨을 맛보는 만남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독서하는 국민은 장래가 있고, 독서하는 개인은 현재의 행복이 있다.

포도주와 우정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지만, 헌책도 읽으면 우리에게 새 삶을 선사 한다.


조선의 경제정책과 점촌(店村)

사람이 생명을 처음 부여받은 고향은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곳이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 고향을 부담스럽게 여기며, 자기 고향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마음의 그늘 때문에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점촌(店村) 태생인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점촌을 낮추어 보는 사람들을 필자는 많이 보았다. 이러한 고향 점촌에 대한 비하는 전근대적 봉건적 사고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산업·경제정책은 ‘무본억말(務本抑末)’ 정책이다. 농업을 근본으로 추켜세우고, 상업과 공업은 하찮은 것이라 하여 하대(下待) 했다.

상업에 종사하면 장돌뱅이요,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쟁이니 바치니 하여 인간 이하로 평가절하 했다.

조선정부는 왜 농업을 본(本)으로 삼았을까? 민생(民生)엔 먹고 사는 식생활(食生活)이 가장 중요했겠지만, 양반들은 대부분 토지를 가진 지주층으로 농업은 양반경제의 근본이요, 주류였다.

농업을 일으키는 것이 양반이 부자가 되는 근본 방책이었다. 상민이 종사하는 상공업이 진흥하면 상민의 세력은 커지고 양반들의 농업경제가 위축되어 양반의 권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부국이 되기 위해서는 상공업이 발달해야겠지만, 양반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 해 중농(重農)만을 한결같이 추구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농업보다 상공업이 발달하여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해외로 진출하여 식민지 개척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영국과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는 본국은 결코 대국(大國)이 아니었지만, 해상활동을 활성화하여 세계 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조선정부는 농본정책으로 상공업을 탄압하고, 해금정책(海禁政策)을 고수하여 국력이 움추려들고 국민들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엔 금점(金店), 은점(銀店), 동점(銅店)이 있었는데, 요새로 치면 금광, 은광, 동광이 있던 곳이다.

문경시 점촌동은 틀림없이 조선시대엔 점마(店村)라 불렀을 거다. 점촌엔 금광, 은광, 동광은 없었지만 흙기와를 굽는 기와굴이 문경여자고등학교 앞 동네와 문경공업고등학교 뒷동네에 있었다.

놀랍게도 1830년 상주진(尙州鎭)에서 제작한 군사지도에 이미 점촌이 나와 있어, 점촌의 역사는 줄잡아도 200년이 넘는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고, 조국근대화가 성취된 것은 흑향(黑鄕) 점촌(店村)의 뒷심이 큰 작용을 했다.

점촌 근교에서 우리나라 석탄의 12%에 해당하는 무연탄이 연간 200만톤 넘게 생산되어 국가경제 뿐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 절대적 공헌을 했다.

적어나마 눈과 가슴이 열린 사람이라면, 폐쇄적인 유교 중심의 동족부락보다 점촌의 열린 상공업지역이 국민행복의 온상이 되고, 태반이 되어 주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점촌 사람들이 텃세를 부리지 않는 것도, 자유로운 상공업 사상과도 뿌리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점촌은 1924년 12월 25일부터 철도가 부설되어, 경북 북부의 중심도시로 기지개를 켜게 되었다.

이 지역의 어떤 촌옹(村翁)은 “점촌은 일본인들이 지배하면서 생긴 이름”이라고, 일본인을 저주하는 게 아니라, 우리 고향 점촌을 터무니없이 비하했다.

이번에 점촌1동 박순진 동장이 정년퇴임 기념으로 100쪽 정도의 아담한 점촌동사(店村洞史)를 펴냈는데, 지금까지 이 고장은 말 할 것도 없고 전국적으로 피땀이 서린 정성어린 향토지를 도시락을 싸지고 다녀도 결코 만날 수 없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정보로 가득 채운 점촌동지는 문경시 뿐 아니라 경상북도, 대한민국을 통틀어도 이만한 쾌저는 단연코 찾아볼 수 없다.

필자가 대학총장이었다면, 저자 박순진 동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화끈하게 주었을 것이다. 비록 동장 직을 정년퇴임하지만, 보배로운 학구정신은 결코 정년퇴임이 없이 영원하리라.


현주(賢主) 광해군의 재발견

필자는 1985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32년간을 무거운 문학의 ‘짐덩어리’를 지고 살아왔다. 전통도예가 백산 김정옥(白山 金正玉) 사기장의 고급 전통도자기를 매년 6점씩 기증받아 백일장 상품으로 사용했다.

백산여성백일장은 1985년 6월 6일에 처음 실시했다. 부문은 시와 산문 2개 부문이며, 고급 도자기는 최우수상과 우수상 입상자에게 부상으로 지급했다. 제1회 백산여성백일장에서 시부문 최우수상(1등)을 수상한 이영숙 양은 당시 영남대학교 작곡과 재학생이었다.

시적 능력이 탁월한 이 양은, 이듬해 일류 시 잡지인 ‘시문학’의 신인상에 추천되어 여성백일장 첫 열매인 맏이로서 저력을 과시했다.
당시 시문학 심사위원은 중진시인 김춘수 교수였다. 튼실한 싹수를 보인 백산여성백일장은 주요 문인들을 배출했으며 올해 제32회를 끝으로 마지막 백일장이 되었다.

그간 32년 계속되는 동안 필자가 백일장은 도맡아 왔다. 필자는 지난 32년간을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 매년 6월 6일 백일장 행사를 잘 마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매년 같은 날(6월 6일), 같은 장소(문경시 점촌동 영신숲)에서 실시하여, 백일장 참가자들의 예측을 가능케 했다. 올해 32회로 백산여성백일장을 마무리하는 것도 영단이 필요했다. 매사에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필자의 판단이 작용했다.

지역의 중요 여성문학도들은 거의 이 백일장에 장기간 출전하여 우수상 이상의 입상경력을 쌓았으며, 근자 우리사회에서 문학의 열기가 현저하게 저하되고, 백일장 주관자인 필자와 상품후원자 백산 김정옥 사기장도 70대 후반으로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할 노년이다.

한동안 상승세를 타던 전통도자기 경기도 재작년부터 매기가 많이 떨어진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기왕 끝내는 백산여성백일장에 획기적인 작품이 창작되기를 내심 기대했는데, 뜻밖의 혜성이 나와 심사를 보던 필자에게 전율을 느끼게 했다.

수필부문에 참가한 남양주시 진건읍에 거주하는 노은희(39) 주부가 그 주인공이다. 노 씨는 수필부문에 참가하여 ‘일 터’란 글제로 백산여성백일장 32년 사(史)를 새뜻하게 빛냈다. 노 작가의 부군은 유품관리사다. 속된 말로 시신을 수습하는 염쟁이다. 노 작가의 부군은 세인이 기피하는 직종에 종사하면서 고인이 가는 길에 정성을 다하는 저승예술가다.

내용이 이색적이었고, 따뜻한 눈길로 글을 풀어나가 더욱 감동적이다. 노 작가의 당선을 축하드리며, 노 작가가 사는 남양주시 진건읍이 필자에게 영감을 떠오르게 했다. 남양주시 진건읍은 슬기로운 광해군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노 작가 덕분에 역사에 소외된 현주 광해군을 재발견하게 됐다. 광해군(1575-1641, 재위기간 1608-1623)이 폐출된 왕이라고 해서 무조건 폭군은 아니다. 연산군은 100% 폭군이 맞지만, 광해군은 치적으로 치면 뛰어나고 성공한 상위 급 제왕이시다. 서인들은 집권을 위해 집요했다.

서인들이 광해군을 명나라에 참소하여 조사단이 조사차 조선 한성에 오게 했다. 주권국가로서 수치스런 일을 서인들이 자초한 것이다.

광해군의 정적 처형도, 태종과 세조와는 게임도 안 되는 규모다. 태종은 정도전과 동생 방번, 방석을 살해했고, 처남인 민무구·민무질 형제를 죄도 없이 처형했다.

세조는 김종서·황보인 정승 등을 격살하고, 사육신 처형·단종살해 등 극악무도한 수준이었다. 서인들의 쿠데타로 광해군은 너무 쉽게 무너졌다. 서인들의 쿠데타 명분은 광해군의 실리외교와 폐모살제를 내세웠지만, 광해군은 이이첨의 인목대비 사사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효자이기도 했다. 그 후 인목대비는 시도 때도 없이 폐주 광해군의 처형을 남발했지만, 인조와 신하들의 거부로 광해군은 천수를 누리게 됐다.

광해군의 18년이란 유배기간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지만, 인생을 관조하고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조선의 왕 중 두 번째로 장수(66세)했다.

광해군은 재위 15년 동안 동의보감(허준) 상재, 실록 재 간행, 대동법 시행, 토지개간, 국방강화, 실리외교, 빈민구제 극진, 조-일 국교복원 등등 광해군은 조선왕조실록이 비하하여, 실록에 기록이 안 된 선정도 많았다.

광해군은 어머니 공빈 김 씨 묘원의 발치에 묻혔다. 광해군의 산소는 능이 아닌 묘다. 공적이 혁혁한 광해군의 산소는 능 급으로 관리해 주기를 권한다.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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