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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의 영지-월방산 3 편
봉서리는 문경의 거울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15년 09월 22일(화)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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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월방산의 핵심인 잿봉서에는 천연기념물급 반송 뿐 아니라, 200년 수령의 비보림(裨補林) 50 여 그루가 마을 왼편을 둘러싸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풍치림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청룡 부분의 허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임을 알 수 있다. 풍수적으로 볼 때 우백호는 여자의 정결과 재물을 나타내고 좌청룡은 남자의 정기와 명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약한 좌청룡을 보하기 위하여 송림을 조성한 것은 조상들의 지혜이다. 현실적인 의미를 더하자면 전면과 측면에서 불어오는 세찬 산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마치 암탉이 날개를 펴서 병아리를 안듯이 다소곳한 형국이다. 청룡등의 미약함과는 달리 백호등은 아주 잘 형성되어있다. 백호등이 있어서 봉서리가 수 백년 동안 잘 보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잘 짜여져 있다.

힘센 황소가 네발을 버티고 뿔을 곤두세워 맹수와 대적하는 형세로 동네의 뒤쪽을 감싸면서 오른 쪽으로 높이 솟아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이러한 지형 구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동네의 안위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조선 개국 초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배산 임수의 이점을 충분히 고려했다."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이 있어 이중으로 외풍을 막아주며 가운데로 청계천이 흐르고 멀리로는 한강의 조운(漕運)을 감안해서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특히 산중에서의 터전이란 거의 자연환경에 의지해야 했으므로 우리 조상들은 풍수를 필수적으로 보았으며, 지금은 도시생활로 인해 형태는 다소 바뀌었다 하더라도 근본 취지는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봉서리는 철저히 풍수에 의지해서 조성한 자연부락이라고 할 수 있다.

ⓒ 문경시민신문
마을에서 소나무 숲을 뒤로하고 걸어내려 오면, 멀리 오른 쪽으로 아련히 3층석탑과 전설을 간직한 개바위와 범바위가 보인다. 개바위는 목이 부러져 몸통바위에 얹혀있다. 임정길 이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아득한 옛 시절 봉서의 봉덕사와 비룡산의 남산절(장안사)이 마주보고 있었는데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스님이 봉덕사에 와서 하는 얘기가 "개바위의 머리를 잘라서 범바위 앞에 갖다 놓으면 절이 크게 번창할 것이다"고 하면서, 지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봉덕사 스님들이 모두 둘러앉아서 상의한 결과, 그 객 스님의 의견을 쫒기로 하고 정과 망치로 여러 날을 작업하여 개바위 머리를 잘랐다고 한다.

그날부터 범바위의 눈에는 눈물이 나고 봉덕사도 시름시름 폐사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후일 알려진 바로는 개바위 머리를 자르라고 지시하고 간 스님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남산 절에서 파견된 스님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신도들이 모여서 개바위의 머리를 주워 몸통 위에 올려 놓으니, 범바위의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고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권모술수가 난무한 것은 승속도 예외가 아니었나 보다. 15년 전에 들은 전설인데 연세 드신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전설을 말해줄 사람도 점점 줄어들 것 같다.

개바위와 범바위를 오른 쪽으로 하고 걸어오다 보면 마을 뒤편에 정자바위가 까만 이끼를 덮어쓴 채로 오동나무 밑에 좌정하고 있다. 두 평 정도 되는 바위가 세개 나란히 놓여있는데, 가서 앉아보니 눈앞은 완만한 절벽이고 오동나무 그늘이라 아주 평화롭다. 농사일을 하고나서 한낮에는 낮잠을 자거나 새참을 먹던 자리 같아 보인다.

월방산에는 이런 너럭바위들이 수없이 많다. 아마 몇년 지나지 않아서 봉서리는 너럭바위마을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탈 것 같다. 정자바위에서 큰 길 따라 200미터 쯤 걸어가면 3층 석탑이 있는 봉덕사지에 이른다. 월방산은 경주의 남산과 비견할 만큼, 주위에 절터가 많고 산악신앙장소도 흔히 볼 수 있다.

ⓒ 문경시민신문
봉서리 탑은 자연암반을 지대석으로 해서 창공을 향해 우람한 자태로 서 있다. 안내간판에는 "바위 옆에 쓰러져 있던 것을 15년 전에 복원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천연 암반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여러 정황으로 봐서 원래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가 본 바로는 원래 자리가 확실하다. 이렇게 천연 암반을 지대석으로 사용한 석탑으로는 경주 남산의 용장사지 위에 있는 3층탑이 그러하다. 남산의 바위 줄기를 내려오면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비로자나불상이 4m 높이의 좌대 위에 앉아 계시고, 그 아래 단애의 바위 위에 3층 석탑이 있고, 그 아래에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지은 용장사지가 있다. 아직 까지는 봉덕사지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지난 1944년도 까지는 탑의 원래 형태가 그대로 있었으며, 그해 여름 새벽에 도굴꾼들에 의해서 탑이 무너졌다고 한다.

ⓒ 문경시민신문
장충식 동국대 교수가 30년 전에 조사하면서 당시의 동네 원로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한밤중에 벼락치는 소리가 나서 이틑날 이른 새벽에 와보니 탑이 무너져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일본인들의 사주를 받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금전에 눈먼 도굴꾼들의 소행이었을 것이다. 그 후 65년 한-일 국교를 수립한 후 우리 정부에서 일본에 문화재 반환 요청을 했을 때 제일 먼저 들여온 유물이 봉서리에 있는 봉덕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이다.

일본에서 반환된 사리구는 서울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다가 경주 국립박물관을 거쳐 지금은 대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특이 사항은 사리구가 고려 청자로 되어있고, 사리함은 향나무로 되어 있으며 금칠을 한 점이다. 그리고 사리함 내에 염주가 같이 담겨져 있다. 현재 대구박물관에 가면 산북면 내화리의 3층 석탑에서 출토된 금동제 사리함과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봉덕사 터는 월방산의 단전 부위에 해당한다. 월방산에서 가장 중심이며 중요한 자리에 탑을 세우고 대찰을 지은 것이다.

예전에 석탑 옆의 소나무 아래에 마모된 2구의 불상이 방치되어 있어서 장안사에 모시고자 했으나 이장님께서 한사코 거절하셨다. 그 후 모두 도굴당하고 나서는 탑 주위에 있는 연화석을 비롯해서 법당 둘레석을 한 군데 모아서 흙으로 덮어두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장님처럼 애향심이 깊은 분이 계셨기에 봉서리의 여타 불상들과 소나무들이 잘 보존되어왔다고 한다. 허리가 편찮으셔서 고생하시지만 멀찌감치서라도 이장님의 얼굴을 보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봉덕사에서 100여 m 내려오면 약간의 오르막이 생긴다. 점촌에서 올라가면 이 부분이 봉서에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이쯤에서 대형주차장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여기에서 마을 회관까지의 거리가 400m이다.

마을 원로의 얘기를 들어보면 "6~70년대 행정구역 개편이 있을 때 봉서리는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주민들의 의견에 의해 호계면을 선택했다"고 한다. 동네에서 뛰어서 10분만 내려가면 산양면 봉정리가 나오고 점촌에서 들어오는 초입도 산양면인데도 호계면을 택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가 뒷산 너머 호계에 있는 호계초등학교라고 한다. 그러나 호계면으로 가는 길은 북쪽의 산길이어서 추우면서도 찻길은 없었다. 말하자면 토끼 길과 같은데도 주민들은 호계에 의리를 지킨다고 호계면에 편입되기를 자원했다고 한다.

70년대 초반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봉서리는 산양면에도 외면당하고 호계면에도 외면당하는 꼴이 되었다 고 한다. 산양면의 입장에서는 집 나간 아들로 산양에 사용할 시멘트도 부족한데 호계면에 소속된 봉서리를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고 한다.

호계면 역시 호계에 사용할 물자도 부족한데 데리고 들어온 자식과 같은 봉서에 구태여 다른 동네보다 몇 배나 소요되는 비용을 들여 길을 닦아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봉서는 정부나 관의 관심에서 멀리 벗어나 자력으로 길을 닦는 도리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전국의 농촌과 달리 정부의 지원 없이 주민들이 문중 산을 처분하고 괭이와 삽을 들고 스스로 마을길을 닦은 것이다. 그래서 "점촌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산간오지처럼 낙후되었다"고 한다. 요즘 입장이라면 "같은 문경이지만 40년 전에는 면과 면 사이는 요즘의 군과 군보다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교통 통신의 불편으로 이웃 면과의 내왕도 무척이나 어려운 환경이었으니 만큼,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행정의 융통성이 부족해서 빚어진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요즘은 보기에 따라서 봉서리는 많은 매력과 발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번에도 밝힌 바와 같이 빼어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경주의 남산 못지않게 많이 산재되어 있다. 잘만 기획하면 문경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보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문경의 캐치프레이드가 관광문경이다. 그러나 문경새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며 의도를 가지고 개발한 곳은 하나도 없다. 봉암사 계곡, 대승사, 김용사 계곡, 선유 계곡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개발된 관광지는 아니다. 그러나 봉서는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기획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우선 거주민 수와 경작지가 적다. 그리고 아직 대내외적으로 거의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현재 주민들이 추진하는 막바지 2차선 개통은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자면 관광객의 유치를 대비하여 400m 거리에 대형주차장을 건립하는 것과 150m 지점에 소형주차장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도보 길을 만들어 월방산과 연계시켜서 2시간 정도의 체류환경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그렇게 되면 지역의 온천도 활성화 될 것이고 오미자라던가 지역 특산픔도 개발할 수 있고 여타 상업도 활기를 얻을 것이다. 막연히 마을 뒤뜰까지 2차선을 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동네를 살리고 지역의 위상을 올릴 수 있는가를 냉정히 살필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에게도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자세가 아닌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의견을 개진하고 더러는 희생하고 선도하는 자세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지역발전과 주민복리에 매진해주기를 바라면서 주민들도 집단이기주의 보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일년 전부터 월방산 명소개발 계획안을 세워 시청에 제출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답변은커녕, 주민들로부터 숱한 욕과 미움을 당해왔다. 그러나 욕을 먹으면서도 나의 뜻을 접을 수 없는 것은 명소개발만이 봉서와 나아가 문경이 발전할 수 있는 활로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고 한다. 지자체에서 천혜의 자연과 문화 환경을 살려서 지역발전을 선도한다면 대대로 모범사례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풀벌레 울어대는 월방산 바위 틈에서 고인(故人)들의 삶을 곰곰이 떠올리며 몸을 뒤척인다.

*글쓴이 지정 스님 약력


86년도 봉암사 출가

봉암사 서암스님 상좌

법주사 승가대학 졸업

실상사 화엄학림 졸업

직지사 교무

예천 장안사 주지 역임

현 봉천사 주지
문경시민신문 기자  ctn6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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