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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의 보물 월방산 2-병암정 일기
글쓴이 // 봉천사 주지 지정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 입력 : 2015년 08월 21일(금)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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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문경시민신문 | | 월방산 봉천사 앞에 자리한 병암정(屛巖亭)은 안동 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정자이다. 기록으로는 200년 남짓이지만 집안 종손의 얘기를 들어보면 훨씬 이전부터 조상들의 공부 터로 전해왔다고 한다.
현재 정자는 3-4 평 정도의 아담한 기와 집 한 채에 뒤쪽으로는 병풍을 두른 듯 바위 돌에 에워싸여 있으며, 석벽 상단부에 병암(屛巖)이라는 각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정자 앞에는 바위를 뚫고 올라온 반송이 250여 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모양도 일품이지만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린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난다. 보은의 정이품송, 영양 석보의 만지송, 예천의 석송령도 아름답지만 기품과 경관을 살펴보면 병암송이 단연 으뜸으로 여겨진다.
정자의 구조는 출입문이 있고 전경을 바라보는 전면에 큰 문이 하나 있으며, 옆으로는 환기를 위한 작은 문하나 그리고 아궁이를 내다볼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있다. 내벽에는 붙박이 장이 있어 옷가지나 이불 등을 넣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방을 제외한 공간은 대청마루가 ‘ㄱ’ 자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한 것은 출입문은 문지방이 아주 낮지만 밖을 내다보는 전망문은 바닥에서 40센티 정도 문지방이 높다. 그 이유를 종손에게 물어보니 출입문은 드나들기 편하게 낮으막하게 설계되었고, 전망문은 누웠을 때 바깥에서 보이지 않고 찬 바람이 머리나 발에 직접 닿지 않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대문 옆에는 200년 이상 된 배롱나무가 철 맞춰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 겨울에 문중의 종손이 왔을 때 대문을 가리고 있는 줄기는 자르자고 하여 허락을 받아 자르고 보니 출입하는데는 시원하나 나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병암정기에 따르면 정자 옆에는 우물이 있었고 석불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으며 연못이 하나 있어 연꽃이 피었다고 한다.
봉천사 마당바위인 봉천대에는 ‘金上舍別庄’ 이라는 각자가 있다. 아무래도 안동 김씨 세도가들의 지나간 흔적이 아닌가 여겨진다. 눈 밝은 이들이 보면 봉천대 일대는 깊은 수행보다는 시와 그림을 그리면서 독서하는 장소로 더 적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김현규(1765~1842) 옹이 지은 병암정기를 보면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아홉 겹으로 둘러쳐 세상과 격리되니 자연이 만든 병풍인 셈이다. 그윽하게 성곽을 이루고 높으면서도 노출이 되지 않으며 우뚝 선 봉우리들은 좌우로 두 손을 마주잡고 인사하는 듯하며 구비 구비 피어오르는 연하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어 스스로 일국을 이루고 있다... 이 정자에서 공부하는 나의 후손들은 몸을 바르게 하여 행실을 삼가는 것을 근본으로 할 것이며, 강학하여 도리 밝힘을 가계로 삼아 서로 선을 베풀고 길러서 몸을 튼튼히 한다면 이에 족할 것이다... 이 정자가 편히 즐기고 노는 장소가 되지 않게 한다면 천년의 봉혈은 대대로 봉황의 새끼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면서 병암정의 지세를 자세히 나열하고 후학들이 가져야 할 몸가짐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기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내용들이다.
20여년 전에 필자는 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을 갔었다.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백미라고 유명세를 타던 80년대 후반쯤 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선원에서 공부를 마치면 바랑을 짊어지고 전국을 유람하던 시절이었다. 20대 중반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삼베먹물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갔었다.
그러나 소쇄원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지 못했다. 내 고향 영덕에 있는 집안 정자도 그만은 못할지라도 농사를 겸하는 옛 선비들의 운치가 물씬 배어나온다. 여름날 밤이면 홑이불을 들고 동민들이 모여 잠을 자기도 하고 낮에는 더위를 피하느라 모여들던 사람살이가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쇄원을 찾아왔었다. 눈 푸른 서양 사람들도 카메라 프레쉬를 터트리면서 원더풀을 연거푸 외치던 것이 기억난다. 주위의 들판이나 연못 등의 모습은 전형적인 정자 모습이고 영남지방의 정자와 다른 점은 앞에 넓은 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남의 대부분 정자들은 시냇물이 흐르고 큰 바윗돌이 주위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거기다가 노송이 한 두 그루 구부정하게 서 있고 앞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어 연꽃이 몇 송이 핀 모습이다. 필자가 본 병암정은 운치면에서 다른 어떤 정자보다도 훌륭하다고 느낀다. 탁 터인 전경과 병풍바위 그리고 너럭바위, 소나무, 대숲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이제까지는 숲에 가리고 인적이 드물어 관리가 허술하여 진가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문경의 명소로 발돋음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난번 시청 문화관광과 엄원식 학예사 에게 건의하기를 병암이라는 말은 병풍바위라는 뜻인데, 담장을 중간에서 끊지 말고 바위 끝까지 이어달라고 했다.
기록상 병암정을 지은 분은 병암(屛巖) 김현규 옹이다. 김옹의 본관은 안동이며 세거지는 산 너머 동네인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이다. 350여년 전에 입향조인 김해 선생께서 서중리에 터를 잡은 후 오늘날까지 대대로 살아오면서 지금도 종택이 전해온다. 김현규 옹은 김해 선생의 7대손으로서 평소 조상들로부터 들어오던 김해 선생께서 글을 보고 정심수양을 하시던 터에다가 병암정을 지었다고 한다. 봉천대에서 호연지기를 가꾸고 병암에서 책을 보셨다는 김해 선생의 가풍을 이어받아 자손대대로 학문과 수양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취지의 병암정기를 남기셨다.
지금 종손은 김해 선생의 14대손인 김정훈씨이며, 어려서부터 거의 서울에서 생활한 연고로 도시 생활에 익숙해서인지 종택이나 정자, 묘우 등 옛날 가옥들의 관리가 허술했다. 그러나 철철이 다가오는 집안의 제사를 챙기느라고 내외분이 많은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현대인들이 놓치기 쉬운 효심이나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과 가세를 회복하고자 하는 일념은 옛 선비의 그것을 빼닮은 듯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 세대들은 관심이 옅어지고 관리비용이나 심적 부담 때문인지 오래된 고택을 헐고 현대식 건물을 짓고자 하는 것을 말리고 있다.
종택은 안동 김씨 문중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수 백년을 이 고장에서 세거하면서 지켜왔기 때문에 문경시민의 자산이기도 하다. 더구나 조선 5백년 성리학의 정신과 안동 김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종택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집안의 책무이기도 하지만, 영광이기도 하다. 여타 재산을 늘리거나 출세하는 것은 인연이 도래하면 누구나 가능하지만 종택을 지키고 현창하는 것은 그만한 세월이 쌓여야 가능한 것이며 종손 이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 힘에 부친다면 시에 부지와 종택을 기부 체납하여 사당과 함께 집안에서 전하는 문집의 글들을 발췌하여 시(詩) 공원을 만든다면 문중 뿐 아니라, 문경시의 유산으로도 길이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근처에 근암서원과 장수 황씨 종택을 묶어서 문경지역 유교문화밸트를 조성한다면 지방의 자랑거리로 충분히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더구나 대승사와 김용사가 근처에 있으니 찾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택 보존은 문중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면서 간신히 말리고 있는 실정이다.
부훤당(負暄堂) 김해(金楷)(1633~1716) 선생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도 수번 등장하는 인물로서 조선시대 당파싸움의 맞수인 동인과 서인의 대립 가운데에서 서인의 거두인 송시열을 탄핵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그 마음이 곧아서 도끼를 짊어지고 도성에 나아가 목숨을 걸고 상소한 영남의 대표적인 재야선비이다. 즉 율곡선생과 우암 송시열은 문묘에 배향할 수 없다는 동인의 주장을 온몸으로 대변한 퇴계학의 후손이다. 그러한 집안으로 근세까지도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으나 해방정국을 기준으로 종손의 월북으로 연좌제의 덫에 걸려 오랜 기간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의 것이 날로 사라지는 시대에 전통문화를 살려 현대에 새로운 가치로 발전시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책무이기도하다. 설사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면 훨씬 중요한 일인데도 그냥 외면하는 일은 없는지 반성할 일이다. 병암정이 자리한 월방산 봉서리는 태고의 문화와 삶이 내려온다.
요즘 필자는 밤잠을 설친 지가 오래되었다. 산중의 조그마한 동네에 2차선이 개통되어 수 백대의 승용차가 동네 안으로 들어와서 소음을 발생시킨다면 현재의 동네가 존속될지 심히 걱정된다. 마을 어른들은 600년의 숙원사업이라고 큰 기대를 하시지만 막상 길이 생기고 마을이 황폐해진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길이 될지 심히 의심이 간다. 출향민들도 2차선 개통이 모든 것의 우선이라고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동네와 최소한의 완충지대가 있고 그쯤에서 주차장이 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야 동네도 살고 병암정이나 봉천사 그리고 반송을 비롯한 풍치림과 수많은 너럭바위들이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걱정이다.
산에서 수도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나름대로 지형을 읽을 줄 알게 된다. 그래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이토록 무거운 것은 사랑하는 마음도 있지만 끝까지 책임지려는 의무감에 걱정이 더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봉천사 주지 지정 약력
86년 봉암사 출가
서암 대종사를 은사로 득도
법주사 승가대학 졸업
실상사 화엄학림 졸업
전국 선원 10하안거
직지사 교무
예천 장안사 주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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