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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촌공공도서관 뜻 깊은 문학기행
충북 옥천의 정지용문학관과 육영수 여사 생가를 탐방하는 문학기행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 입력 : 2014년 10월 13일(월)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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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문경시민신문 | | 경상북도립 점촌공공도서관(관장 장사년)은 10일 도서관 독서회 회원들을 충북 옥천의 정지용문학관과 육영수 여사 생가를 탐방하는 문학기행을 실시했다.
이 도서관은 독서인구의 저변확대와 도서관 역할의 증대를 위해 문화공간으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독서회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매주 목요일 오전에 2시간씩 운영된다.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도서관의 취지에 맞춰 글사랑문학회(회장 조영애)를 만들어 책도 읽고, 문학강의를 들으면서 문학적 소양도 길러 2년에 한 번씩 동인지 ‘끈’을 내면서 실력을 쌓아 4~5명이 문단에 등단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등단하지 않은 사람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문단에 등단할 수 있는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날 문학기행에는 이런 사람 20여 명이 참가해 우리나라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생가, 기념관, 정 시인의 대표작 ‘향수(鄕愁)’를 주제로 만든 향수길 30리를 답사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아 부자집 딸에서부터 대통령 영부인, 비운의 서거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순간을 살아 온 고인의 행적을 살펴 봤다.
▶정지용(鄭芝溶)
1902년 충북옥천에서 출생한 정 시인은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 때 이름이 '정X용'으로 표기되고 그의 시가 금기시 되었으나, 지난 1988년 해금되어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 향수가 수록됐다.
한의사인 정태국과 정미하 사이에서 4대 독자 맏이로 태어나, 12세 때 송재숙(宋在淑)과 결혼했으며, 1914년 아버지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에 입문하여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서 박종화, 홍사용, 정백 등과 사귀었고, 박팔양 등과 동인지〈요람〉을 펴내기도 했으며, 신석우 등과 문우회(文友會) 활동에 참가하여 이병기, 이일, 이윤주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박종화, 홍사용 등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1923년 4월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입학했으며, 유학시절인 1926년 6월 유학생 잡지인〈학조 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등을 발표했다.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이후 8·15 해방 때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여 문학 공개강좌 개최와 기관지 〈시와 소설〉 간행에 참여했다.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으로 옮겨 교수 및 문과과장이 되었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가톨릭계 신문인 〈경향신문〉 주간이 되어 고정란인 '여적'(餘適)과 사설을 맡아보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던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강연에 종사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고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인천상륙작전이 끝나고 수복한 서울에서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천재시인 정지용은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육영수(陸英修)
육영수(陸英修, 1925년 11월 29일 ~ 1974년 8월 15일)는 대한민국의 교육자, 사회사업가이자 대한민국 제 5, 6, 7, 8, 9대 대통령 박정희의 영부인이다. 박정희의 두 번째 아내이며 대통령 박근혜, 사업가 박지만, 박근령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옥천이며 충청북도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서 교사로 1년여 간 재직한 바 있다.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가 겸 소설가 육용정은 그의 작은할아버지이고, 일제 강점기의 기독교운동가 육정수는 그의 사촌 오빠다.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에서 대지주였던 육종관과 이경령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육종관은 대지주이자 지역유지로서 본처 이외에도 3명의 첩을 더 거느리고 있었다. 육영수는 본처인 이경령의 차녀로서 여러 친남매, 이복 남매들을 포함하여 총 22명(12남 10녀)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생활했다. 할아버지 육용필의 동생은 육용정으로 육용정은 조선 말기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개화파 사상가였다.
1938년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배화고등여학교에 입학하였다.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5년 21세 때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 부임, 가사 과목 교사로 1년 3개월간 재직했다.
1950년 소개로 당시 육군 소령이던 박정희를 만났으며 6·25전쟁 중인 1950년 12월 박정희와 결혼했다. 당시 박정희는 첫 부인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재혼하였다. 아버지 육종관은 이 결혼을 반대하였으나, 육영수는 가출하여 박정희의 임지였던 대구에서 하숙하였다. 당시 육영수의 어머니 이경령 역시 남편 육종관의 축첩에 반발하던 중 딸 육영수의 결혼을 계기로 충북 옥천집을 나와 딸과 함께 살았다. 남편 박정희와의 사이에 근혜, 근령, 지만 등 1남 2녀를 두었다.
1963년 부군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영부인으로 청와대로 이주하였다.
육영수는 박정희가 자신과 만나기 전에 이미 결혼 후 이혼한 적이 있음을 알면서도 박정희와 결혼했으며 또한 육영수는 한 때 박정희가 자신을 만나기 이전에 얻은 딸인 박재옥을 키워주기도 했다.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는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으로 인해 문세광에게 암살당했다. 영부인의 향년 50세였다.
현재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 26세까지 살았던 옥천의 생가는 3천여 평의 대지를 옥천군에 기부채납(寄附採納)해 옥천군이 아흔아홉 칸의 생가를 복원해 관리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연일 붐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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