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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문경요, 도천 천한봉 도예명장
“그릇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그릇을 만들고”
문경시민신문 기자 / ctn6333@hanmail.net입력 : 2013년 11월 29일(금)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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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인적자원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지식재산과 산업 간 컨버전스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공정한 경쟁과 사회적 지원제도를 통해 지식재산과 산업 간 컨버전스를 유지 발전시키며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에 발맞춰 문경지역 인적자원의 창의적 활동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릇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그릇을 만들고”



문경요, 도천 천한봉 (1933년생)
경북 문경시 문경읍 당포길 137-1번지

약력
1976년 일본 전국 순회전
1995년 대한민국 도예명장 95-19
1995년 대통령표창
2005년 대한민국 동탑 산업훈장 수훈
2006년 경북 무형문화재 32-나호, 사기장
2008년 한일 문화교류 공로 일본 문화 훈장 수상
2012년 도천 도자미술관 설립
자서전 : '그릇과 나의 인생'
현재 문경대학 명예교수

“장작가마 작품은 요변(窯變)의 작용이 중요하다. 요변으로 얼룽이가 진 사발을 최고로 쳐주는데 이는 유약의 변화로 산화동(酸化銅), 산화철(酸化鐵)의 환원(還原) 반응이며 구워지는 과정 중 화학물질 재질구조가 변화하여 특수한 유약 효과를 말한다. 따라서 한 가마를 가득 구웠을 때 몇 작품이 나온다고 말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수백 점을 가득 넣어 구워도 쓸 만한 그릇은 수 십여 점 밖에 나오질 않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단 한 점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반드시 3년 정도 말린 좋은 소나무로 불을 때면서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불꽃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불 색깔을 보고 조정한다. 불 색깔은 맑고 희어야 한다. 1300도 이상 때다보면 불빛이 뽀햫다. 평균 14시간 땐다. 불을 다 땐 후 구멍을 다 막아야 한다. 안 막으면 식으면서 다 터져 버린다. 가스가마는 넣은 그릇만큼 나오는데, 장작가마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 가마 안 온도만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기온, 기압, 산소 함량, 풍향, 풍력 등 바깥환경도 역시 중요하다.”

작년엔 폐렴으로, 지금은 평생 허리 숙여 장시간 일해서 생긴 허리 협착증으로 몸이 불편하신 명장님께서 눈빛만큼은 고온의 불꽃처럼 형형한 자세로 말씀해 주신다. 문경에서 아무나 하지 않는 흑유도자기를 만들고, 찻사발축제의 창립멤버시고 어려운 시절에도 다른 업으로 변경하지 않고 끝까지 흙을 놓지 않은 분이다. 수준 높은 찻사발 생산으로 문경에 차인들이 많아지고 차문화가 활성화 되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신 분이다. 문경은 ‘전통 도자기’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산증인이시다.

-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여전히 찻사발을 열심히 만든다. 나의 평생 습관인 새벽이전 여명을 깨고 일어나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내년도 ‘일본 동경 게이오 백화점’에서 백화점 50주년 기념 특별 초대전을 할 예정인데 준비 중에 있다. 내가 다섯 딸을 두었는데 그 중 막내인 2대 도천 ‘천경희 작가’와 함께 여는 부녀전으로 찻사발을 중심으로 차도구인 물항아리, 화병, 차호, 등 약 150여 점 전시할 예정이다. 일본사람들의 찻사발 사랑은 여전히 뜨겁다. 단순한 그릇을 넘어서 예술작품으로 바라보는 경향도 강하다.”

- 일본인들이 명장님의 작품을 많이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어에 ‘와비사비(侘び寂び)’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불완전하고 투박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 특유의 멋을 말한다. 아마 내 작품의 투박함과 소박성 때문일 것이다. 또한 떫은 맛과 같은 ‘시부이(渋い)’ 란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수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는 뜻으로 ‘차분하다. 구성지다’라는 의미다. 조선시대 바지저고리를 입고 소를 몰고 밭을 갈러 가는 분위기로 도회적인 세련미나 화려함이 아니라 평범한 듯 운치있고 점잖아 보이는 단아한 맵시가 들어 있어서다. 사실 손님들은 전시실에 들어오시면서 가지는 기대감은 상감청자나 깨끗한 백자, 멋스런 도자기를 기대하고 오시는데 처음엔 얼핏 보기에 지극히 평범한 막사발의 모습에 적잖이 놀라지만, 이내 그 막사발이 주는 평안함과 따뜻한 투박스러움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 어떻게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아버지께서 일본 징용을 가셔서 나는 동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니며 살다가 해방 뒤 아버지 고향인 이곳 문경관음에 정착했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귀국한 그 다음해에 돌아가셔서 4형제 중 맏이인 나는 조실부모하고 생계를 책임지고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13살에 귀국해서 14살 때부터 가장이 된 것이다. 당시 문경에 도자기 공방이 이삼십여 군데 있었는데 지독한 가난 때문에 먹고 살려고 취직을 했다. 이렇게 애를 쓰니 도자기 만드는 꿈까지 꾸었다. 꿈속에서도 어른들께 야단 들어가며 억척스럽게 배웠다. 내가 도자기를 배우지 않으면 굶어 죽게 생겼으니 살아보려고 악착같이 배웠던 것이다. 그 당시엔 백자로 일반 서민 용기인 밥그릇이나 국그릇 등 생활용품을 만들었는데 6.25 전쟁을 거쳐 휴전이 되고 난 뒤 우리 사회는 깨지지 않고 가격도 저렴한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을 옹호하는 문화가 덥쳐 왔다. 경제적으로 몹시 힘들었다. 요강이나 항아리, 호롱, 화분 등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 차 도구를 만드시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그러다가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서 경제가 차츰 나아지며 생활이 윤택해 지자 차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차그릇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한일교류로 일본인들의 왕래가 시작되었고 새마을 운동을 통한 국가경제의 고도성장으로 다시금 도자기 붐이 일었다. 옛것을 잘 계승하는 사찰 스님들은 이미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며 차도구를 활용한 차문화를 유지시키고 계셨다. 스님들은 도예가들에게 차그릇을 잘 만들라고 여러 가지 도움도 주셨다. 예를 들어 차를 따르는 것을 ‘절수’ 라고 하는데 절수가 잘되도록 차그릇 주둥이가 매끈하게 잘 빠지도록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처음 찻사발을 만들 땐 체계적인 자료가 없어서 옛것과 똑 같이 재현하는데 몹시 힘들었다. 임진왜란 이후 일제강점기, 6.25까지 불안한 국내외 정세와 주권박탈로 전통문화의 맥이 끊기다시피 되어서다. 관요만 해도 그렇다.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사기 제작을 삼국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운영하다가 1883년에 관요가 폐쇄되고 흩어져서 각 지방으로 내려가 생산하면서 민간요가 발달되었는데 이 또한 일제강점기를 통해 맥이 끊기다시피 되었다. 어려움 속에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배웠는데 ‘변홍규’씨가 대표적이다. 이승만 박사 초창기 비서실에 계시면서 다완을 연구하라고 일본책도 구해주시고 주일이면 본인이 직접 내려와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 요즘 표현으론 ‘한류’라고 하는데 한없이 가난하던 한국의 1970년대에 어떻게 일본으로 진출하셔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었습니까?
“일본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일본어는 무난하다. 반면 처음 한국에 왔을 땐 한글을 못 읽었다. 물론 다시 한글을 익혔지만... 시대가 그랬다. 일본스님이 한국에 와서 찻사발 만들 도예인을 찾던 중 분청사기 기술이 출중한 나와 인연을 맺게 되어 일본과 거래가 시작되었다. 나는 1967년 털목고개에 ‘조령요’를 설립해서 서성길씨와 1970년까지 동업을 하다가 1971년도에 진안리에서 나는 ‘문경요’를, 서성길씨는 ‘진안요’ 를 설립하며 각자의 길로 갔다. 이때부터 찻사발을 본격 생산하며 일본과 왕래하던 중 1974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1년간의 유학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73년 첫 전시회는 일본 대석사 주지가 NHK 방송국과 언론사 기자들을 초청하여 성황리에 마쳤다. 이를 시작으로 꾸준히 전시회를 열다가 1980년대 초반부터는 정기적으로 일 년에 4번씩 전시했다.
일본 사무실 및 전시실인 ‘고려다완 한국 수입상사’가 40여 년간 북해도 사뽀로 신촌에 있으면서 함께 했는데 4~5년 전부터 일본 경기악화로 회사를 통하지 않고 일년에 한번 가량 주로 교토, 동경에서 직접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엔화 영향은 적게 받고 있다. 한 10여 년 전엔 일본 황실에 꽃병을 주문받아서 보내주기도 했다. 황실에선 아주 흡족해 하셨다.”

- 문경 흙은 어떤가요?
“생활용기 만들기에 적합하다. 식기류로 만들면 음식을 담았을 때 그릇에 간이 안배고 항상 그 색깔을 지니기 때문이다. 만약 다완을 밥그릇으로 사용한다면 반찬 간이 배서 깨끗이 씻어도 음식 냄새가 날 것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누구십니까?
“ 일본차인 ‘이노우에’ 씨다. 일본 가서 전시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인간성이 좋아서 지금은 형제같이 지내고 있다.”

- 북한 도자기는 어떠합니까?
“통일되면 북한 신의주나 전통 깊은 도자기 유적 고장을 둘러보고 싶다. 일본에서 북한 도자기를 전시할 때면 주로 항아리나 매병 등을 볼 수 있다. 한국만큼 발달되지는 않았지만 가스가마에서 구워낸 이북 도자기의 청자색은 좋다. 그런데 뭔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조각이나 그림, 디자인 등 어색한 부분이 많다.”

- 배워간 제자는 누구가 계신가요?
“ 김억주 황담요, 김종필 관문요, 마원의 김동욱 청산요. 강창성의 성주요, 이경희의 후의요, 신석용 갈평요 등등
많이 계신다. 이 중엔 나름대로 개성을 잘 살려서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나를 흐뭇하게 하는 작가도 있다. 요즘은 다른 지역에서 문경 도자기를 배우려고 오시는 분들도 많다.”

- 외국 어느 나라 박물관에 도천 작품이 전시 되어 있습니까?
일본은 여러 군데인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사가 박물관’이며 중국, 소련, 독일, 대만, 영국, 프랑스 등등 여러 군데이다. 내가 기증한 곳도 있고 그 나라가 나의 작품을 사다가 전시하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 ‘문경 찻사발 축제’를 빼놓을 수가 없네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까?
“올해 기준 37개 업체가 참석한 이 축제는 나의 아이디어다. 장작가마 도자기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 끝에 이렇게만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문경 도예인 모임에서 의기투합한 것이다. 12집 가량이 한집에 20만원씩 십시일반 회비를 내어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요구사항도 많고 까다롭고 몇 개월씩 준비해야 하니 힘은 드는데 좋은 작품을 보여 줘야 한다는 책임감과 즐거운 활력소도 된다. 올해는 외국 32개국이 참여했는데 계속해서 국제화가 되어야 한다. 도자기와 차는 불가분 관계이므로 중국이나 일본의 유명한 차인들도 함께 모시고, 더 유명한 국제 작가가 오도록 힘써야 한다. 앞으론 우리 협회에서 자립해서 스스로 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 야단법석이 좋은 예이다.”

- 시청 해당 부서에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매년 5월 찻사발 축제를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특히 외국 작가들을 초대해 주어서 지방행사를 국제 행사로 승격시켜 준 부분은 아주 훌륭하다. 돈도 많이 들어가고, 어느 나라 어떤 작가가 훌륭한지 우린 정보가 없으니 민간인은 할 수 없는 부분을 잘 해 주고 계신다. 그리고 젊은 도예인들에게 도움되는 정보를 많이 달라. 예를 들어 노동부에서 주최하는 응모전 등 그때그때 달라지는 이런 정보를 주시면 좋겠다. 작업을 하다보면 일일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챙기고 응모하기가 쉽지 않다. 관계부서에서 젊은 도예인들에게 일괄적으로 알려주시면 좋겠다. 출연한 방송 매체로는 수십 가지가 되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면, MBC '마지막 조선도공', EBS '우리시대 장인‘ 일본 NHK ' WHO'S WHO?' KBS '11시에 만납시다’, KBS 2 ‘뿌리깊은 나무’ SBS 금요컬쳐클럽 ‘잃어버린 역사(정호다완)’, 국회방송, 불교방송, 일본 TV TOKYO, 영국 BBC 뉴스, 아리랑 방송 등등 다수가 있다.”

- 도예인들께.....
“후배 도예인들에게는 많은 격려를 해주고 싶다. 대체적으로 모두 잘하고 있는 편이다. 경제의 흐름에 따라 문화가 발전되는데 최근에 와서 경제가 어렵고 침체가 되어 문경 도예인들이 고생하고 있다. 경제와 예술은 동반 성장한다. 찻사발 축제를 업그레이드 시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지역경제도 성장한다.”

- 시민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전통작업은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좋아해 주고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도 많은 반면, 쉽게 뚝딱뚝딱 만들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다. 너무 비싸고 다가가기에 힘들다고 불평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그래도 도자기에 관심을 더 가져 달라. 문경 도자기에 대한 특강이나 강의 등등 이런 저변확대가 부족하다. 그리고 도자기 종류에는 생활자기와 예술자기가 있는데 이곳은 예술자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엔 젊은 작가들이 생활자기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으니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후계자도 많이 길러 달라. 찻사발 축제가 문경경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장작가마를 사용하는 도예인들은 전통기법을 계속해서 이어 주시고 찻사발 하면 ‘문경이다’라고 떠오를 만큼 홍보하고 도자기이용을 생활화해 주셨으면 좋겠다.”

- 남은 여생은?
“아쉬운 것은 후계자 양성 부분이다. 2대 도천인 ‘천경희’에게 내 기술을 완전히 전수하고 죽어야 하는데...다행히 2대 도천은 디자인 기술이 뛰어나다. 전통 도자기에 현대미를 잘 가하고 미래 지향적이다. ‘문화예술부분 신지식인’, 대한민국 미술대전, 전국 차 도구 공모대전 등 큰 대회에서 수상한 재원이다. 가마에 불 때는 기술도 처음엔 나 혼자 하다가 딸에게 가르쳐줄 요량으로 함께 때고 있다. 이젠 가마의 불 색깔만 봐도 어떤 작품이 나올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밤잠 안자고 치열하게 일을 한다.
보통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일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

/류명옥 기획팀장 pp72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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